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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키워드 _ 유토피아
시간의 궤적속에 정치화된 유토피아
풍요와 평등에 대한 기대의 좌절
고태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19-02-16 20:45:52
▲ 문화평론가 고태경
지금으로부터 503년 전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발간된다.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ou와 ‘장소’라는 뜻의 topos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말이 유토피아(Utopia)다. 부재하는 장소라는 역설적인 이 단어의 함의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출간된 시점은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이 일어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영국에서 농경지의 빈농들을 몰아내고 목축지를 확대하던 움직임을 보며 “양이 사람을 몰아낸다”라고 한 모어의 비판은 유명하다. 토마스 모어의 당대사회 비판은 현실에는 ‘부재’하는 세계를 그리려던 기획과 연결된 것이었다. 그의 책은 엔클로저운동 비판으로부터 유토피아적 낙원에 대한 묘사로 이동한다.
 
주지하다시피, 유토피아가 지칭하는 것은 지상에는 부재하는 낙원과 같은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신대륙의 발견이 이러한 상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간주한다. 요컨대,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이 유럽세계 바깥의 공간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유토피아라는 것은 시간적 관념이라기보다는 공간적 관념에 훨씬 가까웠다. 우리가 사는 이 야만적인 땅에는 없지만, 이 대륙 너머의 어디에선가는 존재할 것 같은 땅. 엔클로저 운동처럼 인간(빈농 등)을 수단화하거나 주변화하는 일 없이 모두가 행복한 그런 땅이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이 토마스 모어의 시대에 존재했다.
 
모어의 상상은 다시 백 년 후 프랜시스 베이컨에 의해 계승된다. 그는 이제 유토피아라는 모호한 명칭 자체보다 전설 속의 섬인 ‘아틀란티스’에 대해 말한다.
 
신대륙 발견이라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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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륙의 발견은 인류의 사고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했다. 신대륙의 발견과 식민적 지배가 진행된 16~17세기는 동시에 기하학과 천문학이 발전했고, 철학적 물음으로 고독과 불안에 대한 탐구가 본격화된 시점이기도 했다.
 
예컨대 프랜시스 베이컨과 거의 동시대인이었던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좁은 지역공동체가 우주 전체라고 간주되던 세상에서 우리는 ‘무한한 공간’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침묵은 익숙한 좁은 공간이 깨지고, 지구의 저편이 열리는 순간에 비로소 나타났다.
 
이 공간의 무한함과 시간의 영원함은 당대인들의 사고를 더 멀고 더 아득한 곳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공간이 실제로는 무한하지 않다는 점이다. 신대륙의 발견은 18세기로 넘어오며 사실상 거의 완료된다.
 
새로운 대륙들은 유럽 정복자들에게 풍부한 문물을 던져주었겠지만, 당대 지식인들의 상상하던 낙원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발견할 공간의 소멸은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에 변화를 가하게 된다.
 
유토피아의 시간화
 
독일의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은 <유토피아의 시간화>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유토피아적 공간이 더 이상 발견되지 않거나 오늘날의 지상에서도 신의 세계에서도 확립될 수 없다면, 그것은 미래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유토피아는 애초에 작가들의 상상의 산물이다. 상상의 원천이 되었던 공간의 새로움이 사라졌다면, 이제 그것은 시간적 상상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다.
 
18세기 말을 지나 19세기로 오면서 유토피아는 철저히 미래에 대한 담론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또 하나의 변화가 수반되었다. 공간적 상상물일 때, 유토피아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경험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작가의 상상은 공간의 발견과 함께 경험적으로 확증되는 경향을 갖는다(대부분 꿈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이 상상이 시간적 궤적을 갖는 순간 모든 것이 변했다. 유토피아는 먼 미래의 일이다. 거대한 사회혁명과 산업혁명의 격동을 겪었던 19세기의 유럽은 이 먼 미래에 대한 꿈에 사로잡혔다. 크게 두 가지의 흐름이 이러한 시간적 열망을 부추겼다. 하나는 18세기 이후 싹튼 자유주의의 이상이었다. 자유주의는 오늘날 ‘경제’라고 부르는 생산과 소비의 과정들이 자체적인 연쇄와 순환을 통해 문제없이 진행되리라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풍요들을 생산하며 발전할 거라고 약속했다.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의 이상이었다. 공황으로 나타나는 자본주의의 주기적 동요, 빈곤으로 점철되는 노동의 계급 문제는 노동자들의 혁명을 통해 전복되리라 약속되었다. 진보라는 단어는 이 두 가지 함축을 모두 포함했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풍요와 혁명에 의한 평등의 성취. 유토피아는 시간화되면서 동시에 정치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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