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前)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간 위계를 결정짓는 핵심적 기초는 단연 신분이었다. 신분은 어떻게 계급으로 대체되었을까. 자본주의하에서 노동자를 특징짓는 요소는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주의 사상가 칼 맑스는 노동계급을 정의하며, ‘생산수단’의 존재 여부를 강조한다. 노동계급은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자, 생산수단의 부재로 인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보존해야 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 반대는 자본가의 개념을 결정한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 따라서 노동자들을 고용하며 이윤을 획득하는 자가 자본가라는 것이다. 근대의 시민사회는 인권 개념에 기초하여 만인의 평등을 가정한다. 너와 나는 서로 다른 인격일 뿐, 어느 누구도 틀리거나 잘못된 존재는 아니라는 것. 모두에게 일정한 수준의 평등과 자유가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분의 선천적 위계가 사라진 곳에서 계급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옷도, 호칭도 달랐으며, 무엇보다 동격의 인격적 존재로 간주되지 않던 노예와 귀족 간 신분구별과는 달리 계급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손에 잡히지 않는 무엇이 될 때가 많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부와 빈의 문제였고, 시장이라는 추상적 실체에 의해 매개되는 문제였다.
구빈원과 부랑자의 시대
산업혁명 이전까지 유럽에서 빈곤 문제는 지역공동체 전체의 문제와 같은 것이었다. 친인척들이 한 데 모여사는 당대의 생활상에서 빈곤은 공동체적 화두일 수밖에 없고, 이들은 상호부조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다. 반대로, 가족적 준거가 불분명한 빈민들은 구걸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곧 부랑자로 간주되어 공동체 바깥으로 배제되곤 했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는 산업혁명 이전 시기 빈민의 존재를 구별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기능을 했다. 빈민 중에는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지역사회 내 친인척의 공동체적 연대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도 존재했다. ‘부랑자’로 불리기도 한 이들은 지역사회의 변방을 떠돌았고, 교회와 세속당국으로부터 지역공동체의 통합성을 저해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배척되었다.
노동능력이란 모호한 것이어서 신체적으로 큰 장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예컨대 게으름이나 규율의 부족이 문제인 경우는 접근법이 달라졌다. 17세기 이후 병원이 도시에 설립되며, 빈민들에 대한 감금이 시도되었다. 감금의 최종 목표는 노동가능한 자원이 되도록 빈민들을 재교육하는 것이었다.
18세기에는 강제노역이 이루어지는 구빈원이 설치된다. 부랑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 구빈원에는 놀랍게도 ‘부랑자’로 간주되던 이들보다 일거리를 찾는 노동자들의 존재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규율된 노동력이 필요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것은 산업혁명 후의 시대를 예비하고 있었다.
노동시장의 형성과 빈곤의 사회내부화
부랑자들의 감금이 암시하는 것은 단순했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역사회 바깥으로 외부화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노동과 경제적 통치의 문제를 치안의 문제로 전치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반면, 18세기 말로 접어들며 빈곤의 문제는 또 다른 환경과 마주하게 된다. 도시화를 통해 지역공동체 내부의 유대관계는 훼손됐고, 노동시장은 산업혁명 이후 확산되면서 지역당국의 통제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19세기로 들어서며 상황은 제어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는다. 이제 빈곤은 노동시장의 매개하에 사회 한복판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1830년대를 기점으로 노동과 빈곤의 문제는 외부의 치안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 내부의 모순이 드러난 것처럼 부상했고, 당대의 엘리트들은 사회 내적 난제가 발생했다는 의미에서 이를 사회문제(social question)라고 불렀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엘리트들은 시장이 자연법칙처럼 모순 없이 자체 순환하며 발전해갈 거라 상상했다. 반면, 19세기에 등장한 칼 맑스는 시민사회라는 평화롭고 평등해 보이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계급 개념을 발견했다. 이미 그 이전에도 오웬이나 프루동 같은 사상가들이 계급 차별에 주목했다.
시장의 교환관계는 항상 평등해 보이지만, 누군가는 교환을 할수록 부유해지고, 누군가는 하루하루의 노동에 구속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계급 개념의 발견은 보이지 않는 모순과 갈등이 사회의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것은 시장이라는 모호한 실체 속에서 나타난 것이었기에 잘 보이지 않으며, 사회의 ‘모순’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부랑자와 같은 직접적 악의 형상을 하지 않았다.
20세기로 넘어오며 노동자들의 반란이 속출했고, 자본주의는 이제 대처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빈민을 배제하는 방식보다 관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 핵심이다. 통계를 통해 빈곤율을 관리하고, 자기계발 등의 원리를 바탕으로 성장의 새로운 신화를 주입하는 것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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