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철, 2005년 2월 탈북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기자회견을 본 지인들이 필자에게 과연 저들이 정말 사면 받는지, 그리고 기자회견을 보는 북한주민들의 반응 등에 대한 질문들을 많이 해 왔다.
여권 하나만 있으면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남한과 달리 해외여행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북한에서는 일반주민들이 외국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파견노동자와 여행, 그리고 비법월경(탈북)뿐이다.
파견근로자는 당과 보안기관의 신원보증이 전제된 선발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여행은 친척방문이나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만 가능해 외국에 친척들이나 연고가 있고 여행신청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 외국에 있는 친척까지도 보안당국의 까다로운 신원조회를 통과해야만 출국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국외로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제한돼 있다 보니 외국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운데, 여기에 많은 돈과 국내에선 볼 수 없는 신기한 상품들을 한 가득씩 사들고 귀국하자 외국에 대한 부러움과 환상이 더 만연하게 됐다.
▲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인력송출을 늘리고 있는 북한은 충성자금 명목으로 임금의 80%이상을 강탈해간다고 한다. 리비아에서 1년 벌면 북한에서 10년 산다던 말은 옛말이 되고 해외 파견되기 위해 간부들에게 바친 막대한 뇌물비용도 겨우 건진다고 한다. 사진은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북한근로자들(2012년) <사진=필자제공/연합뉴스>
이런 외국에 대한 환상이 체제우월성 선전에 악영향을 미치자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외국에서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일체 말하지 않으며 이를 어길시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는 서약까지 쓰게 한다.
북한은 이처럼 그들의 입까지도 막아버려 외부소식의 북한 유입을 철저히 차단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된 주민들이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의 탈출러시가 일어났고 중국공안당국의 탈북자 체포, 강제북송과 밀무역의 성행으로 외국생활을 경험하는 일반주민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들을 통해 당국이 거의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던 외부세계의 소식은 급격하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거지가 득실거린다던 미국의 식민지 남조선>의 발전상까지 알려지며 주민들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탈북해 한국입국에 성공한 부모, 형제들이 전해주는 남조선의 생활모습과 경제적 지원이 가세해 북한 내 한류까지 불러 일으켰다.
▲ 작년 7월 재입북한 박인숙씨. 김정은 만세를 부르는 기자회견 모습과 가족과 평양에서 사는 모습. 북한당국은 이들을 이용해 젊은 지도자에게 어버이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김정은 우상화를 위한 선전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급기야 북한 당국은 한국에서 살다 가족을 데려가기 위해 몰래 재 입북한 탈북자를 이용해 전국을 돌며 한국을 비방하는 ‘특별강연’을 진행한다. 북한은 이들을 통해 ‘조국을 배신하고 남조선에 갔지만 김정일 장군님은 부모는 자식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다며 너그러이 받아주고 큰 신임까지 주셨다’며 선전한다. 나아가 ‘이제라도 자진 입북하거나 자수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준다’며 김정일의 인덕정치 선전에 열을 올렸다.
당국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탈북했던 자식을 데리고 보안서를 찾아가 선처를 호소하는 부모들, 밀무역을 자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죄를 용서해준다던 선전과 달리 자수를 했음에도 중국마을에서 선교사들이 지원해준 쌀을 받았다는 이유로 반동분자로 몰려 공개처형을 당하거나 오히려 ‘요시찰’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은 항상 감시와 이유 없는 단속을 받자 ‘내 눈을 내가 찔렀다’며 자수에 대해 때늦은 후회를 한다.
북한당국은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탈북자들이 한국행 시도자냐, 아니냐에 따라 처벌수위를 결정한다. 작년에 가족과 함께 탈북 후 한국행을 시도하다 중국공안당국에 체포돼 강제 북송된 지인의 친척은 모두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다.
▲ 프랑스에서 북한수용소 생활에 대한 증언을 하는 신동혁씨. 신씨의 가족은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수감됐고, 신씨는 수용소에서 태어나 24년을 생활하다 탈출해 한국으로 왔다. 북한은 본인이 잘못하지 않아도 연좌제로 가족 모두 처벌이나 제재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한국행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고 심지어 탈북자들과 정 반대인 귀국재일동포, 월북자들에게 붙여놓은 꼬리표(잠재적 동요, 불만세력, 요시찰대상 등) 때문에 2세 3세까지 고통 받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 같은데도 당국의 말대로 소위 조국을 배반하고 ‘적국 남조선’에 갔던 민족반역자들에 대해 급변한 당국의 태도에 주민들은 아직도 우리를 ‘머저리(바보)’로 아냐며 콧방귀를 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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