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철, 2005년 2월 탈북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북한매체들도 연일 전시가요와 6·25 전쟁영화들, 군인들의 훈련모습과 청년들의 자원입대 소식 등을 전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북한매체들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보면 김정은의 전쟁 광기에 군·민이 잘 협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지만 최근 몇 개월 사이 북한군 병사들의 탈영이 증가하고 있어 지휘관들은 훈련보다는 연좌제 때문에 탈영병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평소에도 탈영병과 상관들에 대해 엄중 처벌이 이루어지는 북한군에서 준전시상태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탈영병이 생긴다는 것은 전 군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사건이다. 이런 시기에 평소보다 탈영병들이 증가했다는 것은 군대 내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지금의 병사들이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북한에서 탈영의 대부분은 배고픔이나 학대를 참지 못한 하급병사들 속에서 발생한다. 필자도 북한에서 탈영병들을 많이 보았다. 처음 접하게 된 탈영병은 고등학교 선배였다.
▲ 북한당국이 선전하는 고등학생들의 자원입대 모습=하지만 이들 속에 정말로 자원입대 한 학생들은 몇 명이나 될까. <사진=필자제공>
1996년 경 입대 2년 만에 탈영한 선배 때문에 해당 부대에서 온 군인들이 가족들은 물론 모교 선생님들을 만나 학교에서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탈영하냐며 선생님들을 문책하고 선배의 학교생활에 대해 조사하고 갔다.
소문은 삽시간에 전교에 퍼졌고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탈영한 선배를 학교의 수치라고 까지 했다. 필자를 비롯해 거의 모든 학생들이 이 말에 공감했고 주위의 시선 때문에 선배의 부모님들은 당분간 바깥출입도 못했다.
하지만 몇 개월 후 학교의 수치로 여겼던 선배의 탈영이 오히려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학교 초급비서(총학생회장) 출신 선배가 입대한지 1년 반 만에 영양실조로 해골이 돼 돌아왔다. 공부는 물론이고 군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철봉, 평행봉과 기타 실력도 뛰어나 군 생활은 누구보다 더 잘할 것이라고 믿었던 선배여서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 훈련하고 있는 병사들=북한군 내에서 이런 몸을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병사들에게 가장 큰 위험은 배탈이다. 필자의 고등학교 선배도 7일간 계속된 설사로 인해 결국 뼈만 남은 해골의 모습이 됐다고 했다. <사진=필자제공>
문병을 가서 본 선배의 모습은 더 큰 충격을 주었다. 원숭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탈모로 인해 듬성듬성 남아있는 머리카락과 노란 털들로 뒤덮인 해골 같은 얼굴, 뼈만 남은 앙상한 팔과 다리는 살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놀라울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후엔 참고 견딘 선배가 오히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양실조로 폐인이 돼 돌아오는 사례가 늘었고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은 자식걱정에 눈물로 밤을 새웠으며 당장 군대에 내보낼 자식이 있는 부모님들은 기가 막혀 밤을 새웠다. 그래도 자식들이 군대에 입대 할 때면 ‘군사복무 잘 하고 오라’고 당부하며 애써 웃음 지으며 떠나보냈고 자식들을 생각하며 과도한 군량미 부담도 기꺼이 받아 들였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처사는 너무 가혹했다. 영양실조에 걸려 더 이상 손 쓸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부모들에게 통보하거나 아예 죽기를 기다렸다가 사망통지서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97년 봄 함경북도 어랑군 어대진이라는 곳에 간적 있다. 해안가에 여성해안포중대가 있었고 근처 언덕에 금방 생긴듯한 묘가 13기나 있었다.
▲ 화려한 환영을 받으며 입대하는 신입병사들=어쩔 수 없이 군복은 입었지만 이들 중 많은 청년들은 겉만 북한 군인이다. 지금 북한에는 지고 싶은 전쟁을 원하는 군인들과 주민들이 더 많다. <사진=필자제공>
이렇게 자식을 잃은 많은 부모들은 자식의 죽음에 대해 조국을 위한 영예로운 전사로 애써 위로했지만 전사자의 영예는 북한에서 사라진고 없었다. 유가족에 대한 사회보장 제도는 있지만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유가족들이 받는 대우는 주위사람들이 해주는 위로의 말이 전부가 돼 버렸다.
자식을 잃은 아픔보다 무의미한 자식의 죽음이 유가족들을 더 괴롭고 화나게 만들었다. 90년대 말 부터는 입대자들에게 군사복무 잘 하고 오라는 말 보다 꼭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이 더 많이 쓰였다.
북한군의 현실은 90년대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병사들은 다르다. 남한이 어떤 나라이고 이곳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지금의 북한 병사들은 지키고 싶지 않는 독재정권에 의해 강요당하는 무의미한 죽음보다는 살아남기를 원한다. 그리고 외부세계가 보여준 진정한 인간의 삶이 마음속에 간직돼 있는 한 그 어떤 처벌로도 병사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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