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철, 2005년 2월 탈북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전담기구는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강제노역, 고문 등 광범위한 반 인권실태를 조사하게 된다고 한다.
이에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를 없애 보려는 미국의 적대행위가 가중될수록 우리의 반미 전면대결전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탄압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알려져 왔고 그 잔인함이 세인을 경악시켰다. 하지만 인권탄압의 당사자들인 북한주민들은 ‘인권’이라는 말 자체도 모른다.
필자도 북한에서 대학교육까지 받았지만 ‘인권’이라는 말을 한국에 와서야 알게 됐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은 인권침해 논란으로 사형제를 폐지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반면 북한은 지금도 공개처형을 자행하고 있으며, 심지어 성인들은 물론 어린이들까지도 강제로 끌어다 모든 과정을 지켜보게 하며 교육의 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필자가 처음 공개처형을 목격 한 것은 중학교 4학년(고1) 겨울이었다. 시장에 물품을 사러 갔다가 귀가하던 중 안전원(경찰)들에게 이끌려 영문도 모른 채 시내에 있는 공터로 가게 됐다.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와 있었고 계속 끌려오는 사람들로 인해 어린 필자는 사형수가 묶이게 되는 나무말뚝이 있는 7m 앞까지 밀려 나가게 됐다.
▲ 보안원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트럭기사=아마도 이 트럭기사는 통행증과 화물관련 서류가 완벽함에도 보안원들의 부당한 금품 요구에 항의하다가 이런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필자제공>
9명의 소총수들이 불과 3~4m 앞에 정렬해 구령에 따라 각각 3발씩 총을 발사했고 총성과 함께 놀란 관중들의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판결부터 사형집행까지 불과 30분이 채 안되었고 처음, 그것도 코앞에서 목격하게 된 필자는 충격으로 그 후 3개월 넘게 밤에 밖에 못나갔으며 거의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 타이어 터지는 소리 같은 머리가 터져나가던 소리, 가마니 속에 죽은 짐승 구겨 넣듯이 시신을 밀어 넣고 트럭에 던져버리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공개처형을 당한 세 명의 죄목이다. 한 사람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멈춰서 있는 낡은 기계에서 구리를 절취했고 다른 한사람은 강도, 마지막 사람은 중국에 몰래 넘어가 기독교단체가 지원한 쌀을 가져다 먹은 것이 공개처형을 당해야 했던 죄목이었다.
▲ 도심 도로에서 행인들을 감시하는 보안원=이런 사람의 눈에 걸리는 10중 8명은 고급담배 한 갑이라도 상납해야 풀려난다. 보안원과 보위원들의 대부분은 이렇게 주민들에게서 강제적으로 상납 받는 뇌물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한다. <사진=필자제공>
모두가 가정을 가진 가장이였고 이들은 단지 굶주리는 가족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려 했던 것뿐이었다.
이후부터 공개처형은 한 달이 멀다하게 진행됐고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 10여 차례의 공개처형을 목격하게 됐다. 하지만 그 중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명(인육판매)뿐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왜 죽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모두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죄를 지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북한당국은 정치범수용소, 교화소, 노동단련대 등 각종 구금시설을 만들어 놓고 마음대로 잡아가둘 수 있도록 묵인하고 있으며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은 대놓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주장하며 대가를 요구해 사욕을 채우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용소로, 교화소로, 노동 단련대로 끌려가 살아 돌아오는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할 정도다.
특히 죄의 유, 무를 떠나 남녀노소 막론하고 한마디 안팎에 욕설은 물론 구타까지 거리낌 없이 해대는 일선 안전원들의 횡포에 주민들은 일제시절 악질 순사에 빗대 ‘오빠시’라고 부르며 증오하고 경멸했다.
▲ 노동단련대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있는 여성들=군 단위로 있는 노동단련대는 보안원들이 부담 없이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곳이다. 길가에 심은 가로수 지지대 33대를 훔쳐다 밥을 지어 먹은 것이 죄가 되어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18살 손자에게 6개월(최고형)의 노동단련형을 살게 하는 등 이곳을 거쳐 가는 사람들은 최하층 빈민들이나 또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어쩔 수 없이 보내지는 재력이나 권력의 줄이 있는 중죄인들로 구분된다. <사진=필자제공>
결국 주민들의 분노를 의식한 당국은 보안원으로 개명하고 변화를 꾀했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늑대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주민들이 이런 무자비한 탄압을 참고 견딘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도, 미래도 당과 수령에게 맡겨야 하고 심지어 내 운명과 미래를 맡아줘서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그들의 선택을 무조건 따르고 또 그들을 위해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북한인권문제는 독재체제의 존망과 직결돼 있기에 독재 권력의 인권탄압은 지금도 더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채택된 유엔인권 결의안을 적극 지지하며 인간으로 태어나 짐승처럼 살아야 하는 수천만의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에 작은 변화라도 줄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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