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철, 2005년 2월 탈북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국가보안법. 참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말이다. 필자가 처음 국가보안법이라는 말을 들은 것은 인민학교(초등)에 재학 중이던 80년대 중후반쯤으로 기억된다.
수업시간에 국가보안법이 뭐냐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남조선인민들을 못살게 구는 악법중의 악법’이라고 대답해 주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TV나 신문을 통해 본 남조선소식의 대부분이 ‘국가보안법 폐지’, ‘미군철수’ 등을 외치며 머리에 띠를 매고 시위를 하거나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이 때문에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까지만 해도 TV나 교과서의 내용대로 정말 남조선사람들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살기 힘들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살기 힘들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입고 있는 엄청 비싸 보이는 옷과 신발들을 보면서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어쨌든 미제와 남조선 괴뢰당국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남조선 혁명가들이 대단해 보였고 존경스러웠다.
1989년에는 온 북한주민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사건으로 국가보안법에 대해 더욱 확실하게 인식하게 됐다.
50일 가까이 북한전체를 도가니 속에 빠지게 했던 남조선 전대협 대표 임수경. 죽음을 각오하고 ‘조국통일 만세!’를 외치며 당당히 판문점 분단선을 넘어가는 모습에 2200만이 함께 울었었다.
▲ 전대협 대표를 보기위해 넓은 도로를 가득 메운 수십만의 환영인파=많은 탈북자들이 한국에 오면 꼭 임수경의 안부를 물을 정도로 북한 주민들에게 그는 남한의 모습이었다. <사진=필자제공/KBS자료화면>
그 후 TV를 통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끌려가는 임수경의 모습을 보며 저런 영웅을 철창에 가두는 국가보안법이야 말로 정말 악법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그리고 철창 속에서 무주고혼이 될 임수경 누나 생각(당시에는 임수경이 가는 감옥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곳으로 생각했다)에 화가나 친구들과 함께 흰 셔츠를 찢어 ‘조국통일! 타도! 제국주의’ 등의 글을 써서 머리에 매고 서로 팔을 끼고 길을 따라 행진을 했었다.
어둠이 막 내려앉기 시작하는 초 저녁시간 8명의 학생들이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서로 팔을 끼고 구호까지 부르며 가는 모습을 발견한 순찰 안전원이 허둥지둥 달려와 우리 일행을 막아섰다.
▲ 북한TV에 단골로 등장하던 남조선의 모습=하지만 저들이 입고 있는 옷이며 던져버리는 화염병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필자제공/인터넷 자료화면 캡쳐>
당시에는 어린 나이여서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당국은 TV나 신문을 통해 시위를 하는 남조선 소식을 전하며 북한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면서도 초등학교 학생들이 그 모습을 흉내 내는 것마저 엄격히 통제했다.
90년대 중반 경, 중국에 몰래 드나들며 밀무역을 하던 친한 형네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한국 잡지 속에서 살아있는 임수경의 모습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북한이 악법이라고 규정한 국가보안법에 걸려 감옥에 갔던 사람이,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에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놀라웠다. 그리고 남조선의 국가보안법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 어린아이들에게 까지 철저한 교육을 하는 북한=남한에선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다. <사진=필자제공>
그리고 10여년 후, 직접 보게 된 한국의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파트 밑에 버려진 TV와 냉장고도, 북한에서 몰래 보던 남한 드라마속의 높은 빌딩과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도, 남조선 보도시간에 전해주던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치는 시위대도 모두가 사실임에 놀랐고 국가보안법이 어떤 법인지 알게 되면서 더 놀랐다.
분단 이래 한시도 적화통일 야망을 버린 적이 없는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남한에서,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며 거리에 나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던 필자에게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남한으로 온 것에 대한 후회까지 들게 했었다.
그때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이 스펙이 돼 대한민국의 국정을 논하는 자격까지 부여받을 수 있음에도 6.25 이후 최악의 남북관계라고 평가하는 초긴장 속에서도 국가보안법의 존폐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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