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치 않은 모습과 뛰며 좋아하는 모습은 몸속 안에서 빛나 쌓여서 형태와 모습의 겉모양이 바뀐다. 혹은 기가 마른 나무 같이 이미 변해 재가 되는 것을 기다린다. 색이 만약 죽은 회(灰)같아서 커다란 집에 양(陽)을 낳아서 뼈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신(神)이 살 밖에 보인다. 소리가 멀지 않으면서 운(韻)이 네 자리를 덮으면 비록 도둑을 막는 기이함이 있을지라도 편안하게 나를 숨길 수 있다.
기색이란 것은 둘로 나눈다. 하나는 기(氣)이고 둘째는 색(色)이다. 기는 피부의 속에 있고 색은 피부의 밖에 있다. 기가 화창하고 따뜻하지 않으면 기라고 일컫지 않는다. 곧 빛나지 않고 따뜻하지 않아 기가 흩어질 것이라고 본다. 색이 빛이 없으면 색이라 일컬을 수 없다. 빛이 없으면 색이 없어질 것이다.
기색은 오장육부의 정(精)이 남는 것이다. 밖에 있는 것을 색(色)으로 여기고 안에 있는 것을 기(氣)로 여긴다. 기(氣)가 있으면서 색이 없거나 색이 있으면서 기(氣)가 없는 것은 모두 기색을 길흉으로 인증할 수 없다.
색을 싹으로 여기고 기를 뿌리로 여긴다. 무릇 뿌리를 보면 먼저 싹을 본다. 안에 있는 것은 앞의 일로 아직 만나지 않았다. 밖에 있는 것은 이미 지난 것이다. 선명한 것은 바로 왕성하다. 연한 색인 것은 이미 흩어졌다. 그러므로 일을 기획한 것을 얻고자 한다면 더한 궁(宮)에 있는지 기색이 통행하는 상황을 본다.
이에 사계절의 생극(生剋)의 이치를 나누어 우주의 기에 합쳐지면 120부위를 분별한다. 어떤 궁(宮)에 합쳐지고 기간이 지나갔는지 길흉의 나아감과 물러감을 분별(分別)하면 증거가 아닌 것은 없다.
기색의 참 모양은 한 치, 이 푼이 있다. 1년 열두 달, 하루 열두 시간을 살핀다. 그러므로 일 년의 사이에 흥(興)함이 있고 폐(廢)함이 있다. 하루의 안에 화(禍)가 있고 복(福)이 있다. 기색의 법(法)은 비록 둘로 여겨 나눌지라도 그 실제는 합하여 하나인 것을 법도(法度)로 여긴다.
색(色)이 있으면서 기(氣)가 없는 것을 부광(浮光)으로 여겨 기색(氣色)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氣)가 있으면서 색(色)이 없는 것을 명량(明亮)으로 여겨 기색(氣色)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름 빛으로 매끄럽고 예쁜 것을 때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역시 기색으로 여기지 않는다.
기색은 아침에 나오고 저녁에 폐부(肺腑)로 돌아간다. 사람의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나 흉악한 기운이 이뤄진 것을 논(論)하지 않고 역시 사람이 즐거움 속에 있으며 아름다운 색의 모양이 이뤄져 있더라도 기색 가운데 서리 위에 눈이 있으면 눈 위에 서리의 이름이다.
서리 위에 눈인 것은 얼굴의 기색이 안에 검어 아직 물러나지 않으면서 밖에 검은 것이 몽롱한 것을 더한 것이다. 눈 위의 서리 같은 것은 안에 때의 기(氣)가 얼굴에 가득 차 넘침이 있으면서 그 밖에 또 진한 서리와 비슷하게 한 겹이 일어나 추위를 만난 모양인 것으로 모두 흉(凶)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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