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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으신 나리들의 치유불능 병입고황(病入膏肓)
김종우의 ‘네자이슈’
김종우 필진페이지 + 입력 2013-06-04 20:23:34
 ▲ 김종우(자유기고가)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피ㅡ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꽃 청산(靑山)/어린 때 그리워/피ㅡ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人間事) 그리워/피ㅡㄹ 닐니리/보리피리 불며/방랑의 기산하(幾山河)/눈물의 언덕을 지나/피ㅡㄹ 닐니리
 
문둥병 시인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心琴)을 울렸던 한하운(韓何雲)의 ‘보리피리’이다.
 
천형(天刑)으로 인해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과 아픔 속에서 시를 지은 한하운의 이 시(詩)는 마치 스스로의 힘겨웠던 인생을 미리 예감하고 부른 노래 같기만 하다.
 
또 ‘벌(罰)’이라는 시(詩)도 가슴을 쓰리게 만든다. 내용은 이렇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罰이올시다/아무 法文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옛날부터/사람이 지은 죄는/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그러나 나를/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이건 참 어처구니없는 罰이올시다
 
느닷없이 웬 보리에 한하운 시인 타령일까? 사연은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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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모처럼 아내와 딸과 함께 아파트 어귀에 펼쳐진 야외공원을 찾았다. 마냥 싱그러운 산보(散步)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눈앞에 기이한, 상상도 못할 풍광(風光)이 펼쳐졌다. 4km에 달하는 주민들의 조깅 코스와 우거진 가로수와 꽃 그리고 잔디가 곱게 깔린 드넓은 광장이 전부였던 예전과 달리 공원 한쪽에 ‘푸른 무언가’가 한창 자라고 있질 않던가.
 
보리밭을 조성한 주인공에 대한 감사함을 뒷전으로 하고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이내 달려가 보았다. 근데 도회지에 이게 웬 보리밭이란 말인가?
 
족히 수백 평은 됨직한 넓기만 한 땅에 보리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군데군데 원두막과 벤치도 함께 말이다.
 
 ▲ 필자는 아파트 어귀에 있는 보리밭을 보고 어릴적 아련한 추억에 잠기었지만 이내 문둥병 시인 한하운의 명시들이 뇌리를 스치는 감정이입을 받았다. <사진=필자제공>

그래서일까. 순간, 온갖 서러움과 외로움 속에서 생명과 육체의 온전함마저 보장받지 못한 문둥병 시인 한하운의 명시(名詩)들이 뇌리를 스침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의 이입(移入)이 아닐까 싶다.
 
병입고황(病入膏肓)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병이 고황에 들었다’는 말로 병세가 심해져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를 의미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기록된 유래는 이렇다.
 
…중국 진나라의 경공이 병이 들었다. 치료가 안 되자 무당을 불러 점치게 했다. 무당은 경공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조씨의 귀신(鬼神)에 씌어 병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공은 어찌해야 하냐고 묻자 “이미 늦었습니다. 왕은 올해 나올 햇보리를 먹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무당은 응답했다.
 
이에 병이 깊어진 경공은 이웃 나라의 명의(名醫) 고완을 초청해 치료를 원했다. 그런데 고완이 진나라에 도착하기 전에 경공은 꿈을 꾸었다.
 
꿈 내용인 즉, “고완이 와서 치료한다고 한다. 고완이 훌륭한 의사이지만 천하의 고완이라 해도 우리가 고(膏)의 아래인 황(肓, 명치)의 위에 숨으면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후에 도착한 고완은 경공을 진맥하면서 “병마가 명치, 위, 심장 아래에 있기에 침을 놓을 수도 없다. 약을 써도 그곳까지 미치지 못하니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으나, 꿈에서 본 그대로를 고완이 똑같이 이야기 하자 경공은 후한 예물을 주며 돌아가게 했다.
 
하지만 경공은 바로 죽지 않았다. 6월에 햇보리가 나오자 보리밥을 짓게 했으며, 경공은 무당을 불러 “너의 점은 틀렸다”라고 한 뒤 무당의 목을 자르게 했다.
 
그리고는 경공은 맛난 음식을 먹으려고 수저를 드는데 복부가 팽만해져 거북스러움을 느꼈다. 이에 경공은 급히 변소를 갔으나 결국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이후 후세 사람들은 병세가 키워져 천하의 명의도 치료할 수 없는 상태를 고황(膏肓)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참고로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 편작(編鵲)도 이와 관련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나의 큰 형은 병세가 발작하기 전에 그 원인을 제거하고, 둘째 형은 병이 막 발작하는 초기에 치료했다. 그리고 셋째인 나는 병세가 아주 위중해진 다음에야 큰 수술을 거쳐 치료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큰 형의 의술은 느끼지도 못하고, 둘째 형은 작은 의사로 취급하며, 자신을 천하의 명의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실제로 큰 형이 가장 위대한 명의였다”라고.
 
그런데? 요즈음 역시 주위의 인간 세상사가 요지경(瑤池鏡)이다. 그야말로 병입고황(病入膏肓)이다.
 
일례로 CU를 포함한 편의점업계의 불공정행위를 비롯해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처한 원자력발전소의 비리, 라오스에서 붙잡혀 전격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의 안전문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의 조세 피난처 관련 페이퍼 컴퍼니, 육군사관학교 남자 생도의 성폭행 등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정계, 재계 등등 주로 높은 자리에 있거나 아는 것이 많은 인간일수록 자행하고 있는 꼬락서니가 상상 이상이다. 가늠하기조차 곤란한 지경이다.
 
에이, 소 잃고 황급히 외양간 고치는 사례들이 너무나 빈번한 요즈음. 우리에겐 언제쯤이나 편작(編鵲)의 3형제와 같은 명의(名醫) 아니 리더들이 출현할 수 있을까?
 
요원(遙遠)하기 그지없지만 공원의 보리밭을 다시금 싱그럽게 접하면서 무너진 가슴을 간신히 추슬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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