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 무역을 바탕으로 한 브레튼 우즈 체제(BWS)를 구축해 세계의 규범과 질서를 만들고 지켜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그런 미국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하고 국제 규범을 무시하는 일방적 행보를 보였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과 지역패권국가 구축’을 목표로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운 시진핑 주석 시대의 중국 역시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강대국의 일방주의는 국제 사회에 혼돈과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의 틈새에서 주요 국가들은 세계적 혹은 지역적 차원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행보를 가시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비자유주의적 가치의 표방 면에서 중국 못지않은 미국의 대항마로 부상했고, 터키 역시 이슬람적 가치를 기치로 내걸면서도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을 강하게 나타낸다. 중동 지역 국가들 역시 이란,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종래의 종교 지도나 정책 방향을 벗어난 새로운 합종연횡(合從連橫)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유럽연합 국가들은 미·중 경쟁과 별도로 사안별 각자도생(各自圖生) 구도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1월 26일 미·러는 양국 정상이 핵 군축 협정인 ‘신 전략무기 감축협정(New START)’의 5년 연장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2010년 3월에 체결된 ‘New START’는 전략 핵탄두 뿐만 아니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략폭격기 등의 배치 수까지 제한하는 고강도 핵 통제 조약이다. 2002년 ‘탄도탄요격유도탄조약(ABM)’, 2019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 등이 파기됐고 마지막 남은 핵 군축 협정이라는 점에서 연장 여부가 주목됐다.
중국은 INF 조약의 제한을 받지 않고 순항·탄도 미사일을 개발해왔으며, 2010년 이후 남중국해 주변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반(反)접근·지역거부 전략(A2/AD)의 일환으로 중거리 미사일 능력을 강화해 왔다. 중국은 DF-11, DF-15, DF-16, DF-21, DF-26 등의 중·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CJ-10의 순항 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상 발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DF-21D는 세계 최초의 대함탄도탄미사일(ASBM)로 요격이 매우 어려운 위협적인 무기다. 미 국방부는 ‘2020 중국 군사력보고서’에서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중국의 지상 기반 ICBM 장착 핵탄두가 100기 정도이며, 중거리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이 1250기라고 제시했다.
중국 미사일은 ‘공세적 자국 방어’와 ‘북한 지원 가능성’이라는 두 개의 전략적 기능이 맞물려 있다. 공세적 자국 방어는 미국의 핵 공격 시 미 본토를 핵무기로 역공해 방어하고, 미 재래식 군사력의 중국 접근을 막아 방어하는 A2/AD 구조로 돼있다. 한반도에서 남북간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기로 결정할 경우 중국은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로 한·미 양륙 공·항만을 파괴해 작전을 무력화시키고 한반도에 증원 전력의 투입을 저지할 수 있다.
북한은 2016년 5차 핵실험 및 2017년 6차 핵실험 직후 핵탄두 사진을 공개하고 핵탄두 소형화 기술의 진전을 과시했다.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및 기술적 진전과 함께 북핵 문제가 전략적 위협으로 전환된 것은 이를 투발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 능력이 빠른 속도로 고도화됐기 때문이다. 북한이 현재 개발 또는 보유한 탄도 미사일은 SRBM(스커드B/C, KN-23, KN-25), MRBM(스커드-ER, 북극성1/2/3, 노동), IRBM(무수단, 화성-12), ICBM(화성-13/14/15, 대포동) 등이며, 1000여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산정책연구원과 미 랜드(RAND) 연구소의 공동 연구보고서(2021)에 따르면, 북한 정권은 정권 생존 보장과 북한 지역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를 유지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대한민국 존재 자체가 북한에게 위협이기 때문에 북한 정권 통제하의 통일을 추구한다. 또 해당 보고서는 미국의 영향력에 도전하고 중국에 대한 북한의 과도한 의존을 탈피할 수 있는 지역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핵을 개발하고 보유한다고 분석하면서 2027년경 151~242개의 핵무기와 수십기의 이동식 ICBM을 보유할 것으로 전망했다.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과 팽창하는 중국의 중·단거리 핵 및 재래식미사일(INCF) 전력으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두텁게 미사일 전력으로 포위되고 위협 받는 당사국이 됐다. 북한의 신형 단거리 미사일과 SLBM, 중국의 준중거리·단거리 미사일은 한국에게 큰 위협이다. 특히, 퉁화(通化)의 816여단에 배치된 DF-15는 유사시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을 직접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이 개발중인 ICBM이나 SLBM과 함께 중국의 지상 배치 탄도 미사일은 한반도 유사시 괌이나 오키나와, 미 본토에서 전개되는 증원 전력에 심각한 위협이며, 이로 인해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은 방해받거나 차단될 수 있다. 중국이 추구하는 A2/AD의 결과로 위기 시 미국이 한국에 제공토록 된 확장 억제가 무력화 또는 약화될 수 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 집중 대비해온 한국은 중국의 중·단거리 핵 및 INCF의 위협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미사일방어체계도 문제지만 한국이 개발하는 탄도 미사일은 사거리의 제한으로 중국의 주요 전략 목표를 타격할 수 없다.
북한은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과학 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에 의거 ‘전략무기 최우선 5대 과업’을 극초음속미사일, 고체연료 ICBM, 핵잠수함 및 SLBM, 군사위성, 무인정찰기 등의 개발로 선정하고, 극초음속미사일 고도화에 매진하고 있다. 향후 북한은 전략핵과 전술핵의 2중 핵 역량으로 미국의 군사 간섭을 막고, 한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능력을 키워 최종적으로 북한이 희망하는 방식으로 통일 실현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후 30여년간 우리의 대비 태세는 너무나도 안이하고 허술했다. 북한의 핵과 중국의 A2/AD는 한국의 안보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대응 방안 마련이 급선무다. 한·미 동맹이 70년 이상 지속되면서 우리의 안보 기조는 자강보다는 동맹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각자도생의 세계 질서 속에서 현 동북아 안보 상황을 고려할 때 ‘자강 기반의 동맹’을 안보 기조로 확립해야 한다. 핵전쟁을 막으려면 핵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핵전쟁을 수행할 의지, 능력, 태세를 갖추고 보여줘야 핵 공격과 위협을 막을 수 있다. 자강 기반의 안보는 자체 핵 능력 확보는 물론 핵전쟁을 위한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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