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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가능성을 꽃피우는 도시의 조건
문화의 꽃 피운 도시 피렌체 성장 배경엔 경제력
메디치 등 가문 후원에 예술가 사회적 지위 향상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3-30 12:43:47
 
▲유영이 도시공간문화 전문 칼럼니스트
 꽃피는 봄이 오면 떠오르는 도시가 있다.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도시,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고 문화예술이 발전한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가 그 주인공이다. 피렌체(Firenze, 영문 Florence)는 ‘꽃을 피우다’라는 라틴어 단어에서 유래했다. 14세기에서 16세기 사이, 이 작은 도시국가에는 그 어떤 시대와 사회보다 창의적인 움직임이 거세게 몰아쳤다. 도시 발전의 창의적인 면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피렌체는 몇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력 있는 연구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왜 이 사회가 매우 창의적이며 변화와 혁신의 수용적이었는가. 세계적인 도시학자이자 건축가인 피터 홀은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인류의 창조적인 역사상 가장 특별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그는 인구 약 9만5000명밖에 되지 않는 규모의 도시에서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피렌체가 급격히 성장했던 르네상스 시기는 말 그대로 ‘다시(Re) 태어난다(naissance)’는 의미이다. 학자마다 정확한 시기에 대한 견해가 다르지만 유럽 문명사에서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까지 일어난 문예 부흥운동 또는 문화 혁신운동을 지칭한다. 다른 유럽의 지역보다 피렌체의 르네상스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들의 독창성에 있다. 르네상스는 다양한 과거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피렌체는 단순히 과거의 것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전통과 피렌체의 고유 문화를 융합하여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다.
 
▲브루넬레스키가 완성한 피렌체 두오모 돔은 예술과 기술이 복합적으로 발전한 르네상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ali nuredini
  
그러나 당대를 살았던 피렌체 사람들에게 르네상스에 대해 묻는다면 모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이유는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 쥘 미슐레가 이 용어를 고안했기 때문이다. 이 개념이 보편적인 학술 용어로 정착된 계기는 스위스 출신의 역사학자였던 부르크하르트가 19세기 후반에 출간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라는 저서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르네상스라고 하는 용어보다는 이 시기가 무엇을 이룩했고 역사적으로 왜 중요한지에 주목하는 편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피터 홀은 그의 저서에서 르네상스 시기 피렌체의 변화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부의 급격한 축적이 이루어졌고, 중세의 전통적인 가치가 붕괴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개인의 위상이 변화했다. 페트라르카가 ‘암흑의 시대’라 칭한 중세와 비교해보면 르네상스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중세의 예술 작품들은 교회를 통해 주문 제작되었는데, 이때 사람들의 표정, 즉 감정은 다루어지지 않았고 배경 공간은 평면적으로 묘사됐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에 접어들며 사람의 감정이 묘사되고 인체의 비율 또한 사실적으로 다루어졌다. 해부학이 발달하면서 조각과 회화에 영향을 미쳤고, 기하학이 발달하면서 선원근법이 도입되어 공간의 깊이가 생겨났다. 그 무렵 베네치아에서는 평면거울 기술이 발명되면서 거울 보기가 용이해진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각에 관심 또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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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조각을 통해 사람의 모습과 움직임을 관찰했던 당시 피렌체 예술가들의 노력을 읽을 수 있다. ©francesca pintamedicea
  
피렌체의 예술가들은 자연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서 그리스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이상적인 형태의 아름다움을 적절한 비율로 찾아내고자 했다. 인체 비율을 탐구하여 조각에 반영했고, 그림 또한 더 이상 재생산이 아니라 하나의 이성적인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새로운 생각이 등장했다. 따라서 예술가는 진실과 아름다움의 의미를 스스로 해석해내는 사람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중세에는 성직자만이 할 수 있었던 진실에 대한 해석이 이제는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피렌체의 경제적 성장이 뒷받침됐다.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 피렌체는 무역과 섬유 산업 그리고 은행업을 중심으로 많은 부를 쌓았다. 특히 양모 가공 산업이 발전하면서 양모 길드를 중심으로 부유한 이들이 점차 증가했다. 당시 피렌체는 출생보다 부와 능력이 계급의 기초가 되는 사회로 작동했다. 노력하면 변화할 수 있는 사회 안에서 부와 재능, 시간과 같은 새로운 가치들이 등장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독특한 재능을 활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이 도시 안팎으로 퍼져나가며 다양한 사람들이 피렌체를 왕래하게 됐다.
 
경제 성장으로 부를 이룬 이들은 개인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가문의 영광을 위해 예술 후원을 이끌었다. 이 논의에는 당대에 유명했던 가문 중 하나인 메디치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당대 가장 부유한 집안으로서 예술가들을 후원하기에 앞장섰다. 중세에는 교회와 수도원 중심의 후원 문화가 가문과 개인을 중심으로 변화된 것이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를 통해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 또한 향상됐고 이들은 천재적인 다양한 분야의 예술 활동을 펼쳐나갔다.
 
다양한 분야에서 1400년대 피렌체는 하나의 가치 시스템의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특이했던 점은 그 이전처럼 출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길드 한 곳에 가입하면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능력에 따라서 계급 이동의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개인이 얼마든지 노력하면 이루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사회가 피렌체였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능력을 창의적으로 더욱더 활발하게 펼치는 데 몰두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개방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혁신을 살펴보며 600년이 더 지난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노력하면 변화할 수 있는 사회라는 ‘가능성’을 믿고 있을까. 창의적 도시의 기반은 나와 다른 이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지금, 새로운 가치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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