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에스더 7 : 3>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퇴임 대통령으로는 두 번째 낙향하는 전임 대통령이 되었다. 노무현은 태어나 자란 곳으로 갔고, 문재인은 제2의 고향이라 불리는 양산 마을로 갔다.
역대 대통령 13명 중 서울 출신은 연희동에서 태어난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하다. 나머지 지방 출신 대통령들은 모두 퇴임 후 서울에 머물렀다. 현재 복역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 내곡동에 사저를 잡았다가 문제가 되자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살았다. 서울 내곡동에 ‘사저’를 마련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특별사면 이후 ‘자의 반, 타의 반’ 대구 달성군 쌍계리로 내려가서 지내고 있다.
5월10일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경남 양산시 평산 마을로 내려갔지만 토지매입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연금 비과세, 비서실 활동비, 49억원을 들인 경호원 건축비 및 경호 인력 2배 증원, 사저 대지면적 2배(796평) 등과 관련해 석연치 않게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문 전 대통령이 평산 마을에 도착해 내뱉은 일성(一聲)은 “저는 이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자유인입니다”였다. 또 ‘국민으로부터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왜 국민으로부터 잊혀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왜 경호 인력을 기존보다 배로 늘렸을까?
이제 평산 마을로 낙향한 지 한 달 남짓,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평산 마을이 예견한 대로 매우 시끄럽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확성기를 틀고, 시위를 하면서 마을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또 최근 구글이나 페이스북, 유튜브를 검색하면 평산 마을 문 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비난의 글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오죽하면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을까? 문 전 대통령은 “길은 멀고 날은 저물었다”고 말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듯 ‘JTBC 대담 문재인 5년’에서 임기 내 추진한 종전선언이 무산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남긴 말이다.
지난 5년의 국정 운영을 돌이켜보면 회한(悔恨)으로 가슴 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얼마나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는지 모른다. 문 전 대통령은 “나는 링 위에 오른 적이 없다”고 강변하며 발뺌을 하지만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뼈아픈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듯싶다.
얼마 전 청와대가 임기를 앞두고 KTV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문재인정부 5년의 기록,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보면서 필자는 정권 재창출 실패 이후 문 대통령의 불편함과 초조함이 배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아니라 ‘아무것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며 국민 분열을 자극하고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며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이슈가 터지면 뒤로 숨기에 급급했고, 좋은 일에는 주무부처를 무시하고 직접 나서서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는 데 앞장섰다. 자화자찬을 넘어 견강부회가 많았다. 자신 자랑만 넘치고 반성이 없으니 공허한 마음에 실소를 금치 못했던 적이 몇 번이었던가.
그런데도 열성 지지자들은 여전히 ‘문비어천가’를 틀어대며 열광한다. 청와대를 떠나며 전직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었지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반쪽의 진실이 아닌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실의 차원에서 진정으로 고뇌한 날들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지적하고 싶은 게 많지만, 인권변호사라 자처하시던 문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북한군에 피살되어 화형까지 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아들과 했던 약속도 끝내 외면하고 무슨 비밀이 있기에 관련 내용을 십년 이상 열람할 수 없는 국가 기밀문서로 만들었는지 국민은 궁금하다.
지난 5년 허울 좋은 평화론에 빠져 허송세월 보내는 동안 군기는 빠지고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도 도발이 아니라고 하면서 안보위기를 초래했다. 특히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어 북한 동포의 알 권리를 봉쇄하고 탈북자들을 배신자로 몰았다. 국민이 체감하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난 5년간 정체되거나 뒷걸음질쳤다는 지적에 어떻게 궁색한 해명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문 전 대통령은 지역 주민들과 막걸리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한편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만나 왜 그러는지 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사과할 일이 있다면 사과하고 오해가 있다면 대화로서 풀어야 한다.
한때는 그들도 대통령이 지켜줘야 하는 국민이었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기 전에 고소부터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물러난 전직 대통령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며 진정어린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게 못내 아쉽다. 아무쪼록 ‘퇴임하면 잊히고 싶다’는 문 전 대통령의 소박한 희망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언 12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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