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의 돌연한 죽음으로서 일본은 거대한 변화의 서막을 열었다. 어떤 까닭에서 거대한 변화의 서막이라고 하는가? 이 점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 연원(淵源)을 거슬러 올라가 1185년에 시작된 ‘가마쿠라 막부’ 체제 이전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이런저런 지류(支流)가 매우 복잡다단하다.
짧은 글에서 이것을 다 열거하긴 어렵고 최근에 이르러선 자민당 주류와 비주류 간의 갈등, 호헌파와 개헌파, 천황직 계승에 대한 규범, 아이코 공주의 즉위 가능성 등이 이번 사건의 배후와 바닥에 놓인 주요 일들이다. 여기에 1990년 버블 붕괴, 1995년의 코베 대지진, 1911년의 동일본 대지진 등등 그 결과 ‘잃어버린 30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민당 비주류 계열로 출발한 아베 신조
일본엔 현재 천황 중심의 호헌파(護憲派)와 헌법 개정을 통해 자위권을 지닐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민당 아베 파벌 중심의 개헌파(改憲派)가 있다. 덧붙이면 호헌파가 야당 또는 소수 세력이고, 개헌파가 여당 또는 다수 세력이다.
아베 신조는 원래 자민당의 비주류 계열로서 일본 버블 붕괴 이후 동경대 법대가 장악하고 있는 대장성을 재무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등장한 신진 세력의 한 명이었다. 그 이후 자민당이 2009~2012년 기간 중 야당이 된 이래 급격히 당내 실세로 등장했고 2012년 자민당이 정권을 되찾자 ‘아베 내각’을 출범시켰다.
이때부터 아베 신조는 아베노믹스와 함께 평화헌법 개정을 본격 추진했고 2020년까지 최장기 총리이자 줄곧 자민당 내 최대파벌의 보스로 군림해왔다. 정권 획득과 유지 과정에서 일본회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으며 수많은 이익단체와 압력단체와도 개인적인 연결을 통해 거래를 해왔다.
아베 통장 비밀번호가 유실됐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베의 죽음과 동시에 그가 오랫동안 개별적으로 주고받은 무수한 거래내역과 비자금이 들어있는 통장들의 비밀번호가 동시에 사라졌다고 말이다. 모두 아베 개인을 통해 일어났기에 ‘아베파’에 속한 여러 ‘제2인자’들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될까? 최대 파벌이었던 아베파는 이제 유지될 수가 없다. 금권정치의 원동력인 막대한 비자금의 소재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수많은 이익단체들과 압력단체들이 ‘아베 보험“이란 상품에 가입했을 것이고 그간에 수시로 거래를 해왔을 터인데 그 내역이 일시에 사라진 셈이다. 그야말로 황당할 것이다. (참고로 일본은 금융실명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일단 자민당 내부에서 ‘헤쳐 모여’가 조만간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 총리인 기시다는 웃고 있을 것이다. 아베 신조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직에 올랐으나 원래 자민당 비주류-지금은 주류-였던 아베파와는 달리 이시다 시게루 계열 즉 원래 보수 본류-지금은 오히려 비주류-의 파벌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예상된다.
2025년 한일관계 정상화
한일관계는 과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필자는 2025년에 한일 양국의 관계가 다시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1905년의 을사 보호 조약, 비록 힘에 밀려 강제 당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관계가 깊어졌다. 60년이 흘러 1965년의 한일 회담, 미국이 나서서 두 나라를 맺어주었고 그로서 일본이 우리의 경제개발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러니 다시 60년이 흐른 시점은 2025년이 된다. 다시 을사(乙巳)년이다. 이번엔 미국의 중재보다도 양국 스스로 대등한 입장에서 화해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는 것이다. 그간 우리 대한민국은 강국이 되었기에 일본 역시 이번에는 자세가 보다 은근하고 정중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눈앞의 흐름, 최근 몇 년 사이의 흐름은 아베 신조와 문재인 정부 간의 갈등만 불거졌을 뿐이다. 양쪽 모두 자신의 정치에 이용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관계 정상화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아베파의 움직임이 별로인 것 같아서 이거 쉬운 문제가 아닌데 하는 걱정을 해왔던 터였다.
일본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일본의 국운(國運)을 살필 것 같으면 올해 2022년이 60년 순환에서 소만(小滿)인지라 모종의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고 추산해왔다. 그런데 아베 신조가 사망했다. 기시다는 요리조리 재는 타입이긴 하지만 훨씬 실용주의자여서 관계정상화에 훨씬 더 호의적인 인물이다. 그러니 이번 사건은 일단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신조, 나름 위대한 정치인이었다. 원래 아베는 친한파에 속하던 인물이었는데 현실 정치를 하다보니 도중에 어쩔 수 없이 우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변했다. (그 어떤 정치인도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일 수가 없다. 유권자의 생각이 우선인 까닭이다.)
일본, 누군가의 표현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다. 피차간에 모르는 게 실로 많은 우리와 일본이다. 아베 신조의 죽음, 이번 일로 해서 긍정적인 계기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러니 저승길 잘 살펴 가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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