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현충원의 밤 하늘 ⓒ스카이데일리
믿어야 하나
무지한 힘이 내 살을 뜯어도
지는 것이 이긴다는 거
믿어야 하나.
빈곤한 진실이
거짓 부자보다 축복 받는다는 거
믿어도 될까.
하늘이 있기에
악한 자 심판 받는다는 거
믿을수 있나.
텅빈 가슴에
양심과 정의만 있다고
배부르다던가.
빽이라도 있어야지
핸드빽이든 도망빽이든
그래야 시장바닥 버려진 우거지라도 채우지.
모두가 옳은 소리
헛 소리 소리만이
우렁차게 허공에 부서져 나간다
<深頌(심송) 안호원>
☞ 무한권력
삶의 시험에 유인되는 순간순간의 유혹들이 시인이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는 것은 생명의 뿌리 깊은 곳을 시험에 들게 하는 힘든 요인들에게 우리 모두는 거리를 두고 온전히 그것을 떨구어 내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시험에 빠져드는 것을 통제할 윤리와 도덕이 가능하고 또한 있다면, 아니 어느 정도만 작동돼도 시인의 아픔이 덜 했고 세상을 확실히 믿었을 터다. 하지만 세상의 가면들이 윤리와 도덕까지 철제 갑옷으로 둔갑시켜 그것으로 치장하고 무장하니 그런 세상의 섬칫함을 ‘믿어야 하나’로 드리우고 있다.
▲ 시와 시평 ⓒ스카이데일리
“지는 것이 이기고”, “빈곤한 진실이 거짓 부자 보다 축복받는다”는 사실에 의문을 단 시인은 평소의 생활을 보면 오감의 영역에서 시도한 것일 뿐 영혼의 영역에서는 믿음이 확고한 의문의 역반증 확신이다. “하늘이 있기에 악한 자 심판 받는 것”을 또한 의심한 것은 목회자인 시인에게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삶의 종착점 그 결과이기에 겉은 좌절한 것 같지만 안은 ‘절실한 기도’ 그 이상이다.
<소회(素懷)> 현실의 윤리를 권력의 한 형식으로만 가정하고 보자. 동양의 성현이나 서양의 사상가들이 말해 온 어록들은 보이지 않는 일면으로 ‘윤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윤리를 지키는 것’ 보다 세상의 권력을 갖기가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우를 범하게 했다. 그런 어록들을 열심히 공부한 일부의 지식인들은 윤리를 창과 방패삼아 실제로는 윤리를 철저히 배격해 왔고, 그런 과정을 지렛대 삼아 권력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시인이 시어로 말하고 있는 “양심과 정의”도 결국 윤리의 범주 안에 있다. 그것이 ‘충만하다고 배부르냐’며 의심하는 것도 타락한 윤리에 대한 위험한 상황을 비상벨로 마구 울리고 싶은 울컥한 마음에서 나온 듯싶다. 세상의 권력을 ‘빽’으로 통일하고, 그것에 ‘우거지 채우는 것’으로 항변하는 시인의 권력은 어느 누구 보다도 당당하게 큰 소리 칠 수 있기에 무한권력이다. 시인의 무한권력은 아무리 큰 빽도 수용하는 그런 식이다.
<스카이데일리 문화팀=안호원 시와 시평집>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