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체계적으로 조작된 천년 기자조선은 일제강점기 때 이마니시 류(今西龍)로 대표되는 일제 식민사학계로부터 고고학적 발굴과 문헌상으로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존재가 전면 부정되었다. 기자조선은 허구이며 설사 존재했더라도 중국인이 세운 나라로 조선과 관계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는 조선의 잘못된 역사를 대변하거나 올바르게 재정립을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가 아니라, 아예 단군을 우리 민족사에서 깡그리 지워버리기 위한 것이었다. 기자조선을 인정한다면 그 이전의 단군조선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단군이 요임금 때 조선을 세웠으니 역년 4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조선인들을 영원히 우매한 식민지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의 위대하고 자랑스러웠던 상고사를 말살해나갔다.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한 사업이 바로 단군신화다. 단군을 역사와 상관없는 신화 속 인물로 조작함으로써 4000년이나 되는 배달국과 조선의 역사를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이러한 사실은 초대 조선총독 테라우치 마사타게(寺內正毅)의 ‘조선식민통치사’에서 엿볼 수 있다.
“조선인들은 유구한 역사적 자부심과 문화에 대한 긍지가 높아 통치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만드는 방법은 그들의 가장 큰 자긍심인 역사를 각색해 피해의식을 심는 것이었다. 조선인을 뿌리 없는 민족으로 교육해 그들의 민족을 부끄럽게 하라. 문화 역시 일본의 아류임을 강조해 교육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대일본제국의 신민으로 거듭나고 싶어 할 것이다. 창씨개명을 통해 먼저 조상 단군을 부정하게 하라. 그것이 식민지 국민을 식민지 국민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1919년 민중혁명 이후 부임한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實)는 “조선인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럼으로써 민족혼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한 뒤 조상과 선인들의 무능·무위·악행을 들추어내고 또 그것을 과장해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부정하고 경시·경멸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해 부정적인 지식을 얻게 될 것이며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때 일본의 사적·문화·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중요한 방법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 조작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1921년 12월에 훈령을 발령 ‘조선사편수회’의 전신인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해 우리 역사를 본격적으로 말살했다. 여기에 참여한 조선인 고문이 이완용·박영효·권중현의 친일매국노들이었으니 그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하겠다.
실무연구진으로는 이능화·어윤적·홍희·이병도·신석호·최남선 등이 근무했다. 이들 중 광복 이후 이병도가 서울대 교수로, 신석호가 고려대 교수로 임용되면서부터 그들이 가리킨 후학들에 의해 망국의 식민사학이 이 땅에서 계속해 뿌리를 박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강단사학계는 아직도 일제치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반민특위 해산으로 친일파를 단죄 못한 우리의 업보일 것이다.
여기서 위만의 행적을 더듬어봄으로써 왜 일제가 위만조선을 강조했는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한 고조 유방의 죽마고우이며 개국공신인 노관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흉노로 망명하자, 부장이었던 위만도 망명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런데 B.C 195년에 번조선의 기준 왕이 실수해 그의 망명을 허락해 박사로 모시고 봉지를 주었다.
이듬해 변방에서 국경을 지키던 위만은 기준 왕에게 “한나라가 쳐들어오니 도성으로 들어가 왕을 호위하겠다”라고 거짓 보고를 올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도성을 기습하니 기준 왕이 측근들과 함께 韓의 땅으로 달아났다. 이로써 위만이 번조선의 왕이 되어 손자 우거 때인 B.C 108년까지 지속되다가 망하는데 이를 위만조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만조선은 대단히 잘못된 단어이다. 당시 북부여가 다스리는 전체 조선을 진조선·마조선·번조선이 분할통치하고 있었다. 마치 미국의 연방제와 같은 개념이었다. 그 삼조선의 하나에 불과한 번조선이 도적에게 넘어간 것을 두고 전체 조선이 망하고 위만조선이 성립해 고조선을 계승했다는 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왕조가 신봉했던 천년 기자조선보다 이렇게 조작된 위만조선을 강하게 조명했다. “옛 조선의 역사는 위만조선과 한사군의 지배로부터 시작되는 식민지배의 역사이므로, 지금의 조선이 이민족인 일본에게 지배를 받는 건 당연하다”는 논리가 그들이 조작하고 추진해나가는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군신화를 조작해 조선과 그 이전 수천 년의 상고사를 깡그리 지워버리고 천년 기자조선을 전면 부정함으로써, 이민족 위만과 한사군으로 이어지는 식민지배의 역사를 강조했다. 이는 조선인 스스로 역사 없는 우매한 민족임을 느끼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야만 힘들어도 아무 불평불만 없이 소나 말처럼 먹을 것만 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말 잘 듣는 식민지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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