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바닷가의 한 작은 마을에는 세상을 먼저 떠난 어느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새겨 넣은 벤치들이 있다. 바다가 가장 아름답게 바라보이는 길목이면 어디에나 어김없이 이름이 새겨진 벤치가 묵묵히 놓여 있다.
그중 벼랑 위에 외롭게 놓여있는 벤치가 유독 우리 부부에게 각별하다. 이 벤치를 맨 처음 만난 것은 우리가 61개 계단을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을 때이다. 마치 벼랑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듯 소리 없이 손짓하며 앉으라고 자리를 내주었던 벤치다.
다음 순간, 앉아 있던 벤치의 등받이에 이름과 생애가 정성을 다한 글씨체로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의자가 아닌 어떤 이의 메모리얼 벤치임을 알게 되어 삶과 죽음의 이별에 숙연해 지던 것이 벌써 17년 전 일이 되었다. 아마도 벤치의 주인도 살아생전에 61개 계단을 오르느라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여기에 멈춰 서곤 했을 것으로 그려본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절벽 위에 외롭게 놓여 있던 벤치 곁으로 두 개 벤치가 나란히 더해졌다. 세 개로 늘어난 메모리얼 벤치를 보니 살아남은 이의 가슴 속에 담겨진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이 한층 더 뭉클하게 다가왔다.
며칠 전 해변을 지나 산기슭을 따라가다 61개 계단을 올라가니 벼랑 위의 벤치에 놓인 작은 꽃다발이 눈길을 끌었다. 작은 꽃잎들이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동안 꽃다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손바닥 길이만큼 가지런히 자른 카네이션 몇 송이는 누군가의 추억어린 정원 한쪽에서 야생화처럼 비바람 속에 피어나길 바라보며 기다렸던 것인지 마디마다 이리저리 굽어있었다.
어느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누구의 손길이었을까. 아직도 꽃다발을 싸매던 온기가 마치 꽃향기인 듯 코끝을 찡하게 자극했다. 화려한 색상과 곧게 자라나 완벽한 모양을 갖춘 화원의 꽃다발이 모방할 수 없는 숭고함이 담겨 있기에 꽃다발이 더 아름다웠고 한동안 꽃다발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메모리얼 벤치 위에 소박한 카네이션 꽃다발이 놓여있던 그날 그 벤치는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꽃다발이 놓여 있는 동안 만큼은 어느 누구도, 벤치에 앉으려 다가 왔다 해도 감히 그들 사이에 끼어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벤치와 꽃다발이 저 생의 언어로 나누는 대화의 장면은 마치 이 생이 닿을 수 없는 순수의 경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듯, 이방인을 밀쳐내는 기운이 서려 있는 듯했다.
그러니 우리 고개 숙여 사랑하는 이를 두고 간 사람들에게 명복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에게 애도를 표하며 물러나 그들만의 시간을 갖도록 자리를 남겨 주도록 하자.
“I thought that love would last forever: I was wrong.”
(사랑은 영원하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어요)
“Stop all the clocks, cut off the telephone,
(시계를 모두 멈춰라, 전화기를 끊어라.)
Prevent the dog from barking with a juicy bone,
(기름진 뼈를 문 저 개가 으르렁대지 못하게 하라.)
Silence the pianos and with muffled drum
(피아노를 침묵하게 하고 나즈막히 북소리를 울려)
Bring out the coffin, let the mourners come...
(관을 내오고, 추모객들을 부르라.)
...He was my North, my South, my East and West,
(...그는 나의 북쪽, 나의 남쪽, 나의 동쪽과 서쪽,)
My working week and my Sunday rest,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휴식이었다)
My moon, my midnight, my talk, my song;
(나의 달, 나의 한밤중, 나의 이야기, 나의 노래였다)
I thought that love would last forever: I was wrong.
(나는 사랑이 영원하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어요.)
The stars are not wanted now; put out every one,
(지금 별은 필요치 않으니 모두 버리시오)
Pack up the moon and dismantle the sun,
(달을 꽁꽁 싸두고 태양을 해체하라)
Pour away the ocean and sweep the wood;
(저 바닷물 몽땅 쏟아버리고 숲을 모두 쓸어내라)
For nothing now can ever come to any good.”
(이제는 그 어느 것도 소용없을 것이니.)
W. H. Auden(1907-73)Twelve So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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