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hegemonic rivalry)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중 간 전략 경쟁과 갈등이 정치·경제·군사 분야로 확대되면서 미·중·일·러 간 역학 관계로 동북아 지역의 불확실성 또한 더욱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은 역내 영향력을 확장하고 적극적인 군사 활동으로 미국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작전, 대만과 협력 강화 등에 대응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세와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 활동으로 역내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미·중 갈등은 애초 양국 간 무역 불균형 문제로 불거졌으나, 이를 넘어 경제분쟁으로 확대됐다. 외교·군사 차원에서도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의 전략이 가시화됐다. 2019년 6월 발표된 미국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대중 군사 전략이 구체화됐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군사굴기(軍事崛起)를 위한 국방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꿈’ ‘신형대국관계’ ‘일대일로(一帶一路)’ 등과 같이 대외 관계에 중점을 두는 통치 이념이 등장했다.
미·중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직접적 요인은 북핵 문제, 홍콩 및 대만 문제, 동·남중국해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쟁점이다. 특히 미·북 간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에 대한 협상은 중국의 핵심 이익과 결부된다. 중국은 비핵화에 찬성하면서도 북한의 체제 유지를 위해 적극 관여할 것이며, 유사시 미국과의 전략적·군사적 충돌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대만 문제 역시 중국이 규정하는 핵심 이익으로, 잠재적으로 미·중 간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핵심 쟁점이다. 더구나 중국은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 분쟁과 남중국해 ‘9단선(중국이 주장하는 U자 형태의 9개 선)’에 11개의 군사 기지를 건설하면서 미국 및 일본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인도·호주와 연계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봉쇄하기 위한 경성균형전략(Hard balancing strategy)으로 미·중 간의 전략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올해 전 세계가 코로나19 여파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주요 국가들의 자기중심적 국제질서 재편 경쟁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기존 국제질서의 회복과 개선을 추구하고, 중국도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모색하며 직접적인 충돌 대신 상대방을 압박하기 위한 연대와 우호세력의 확보에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미국은 동맹의 복원을 중요한 가치로 내걸었고, 중국은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 7월)을 맞아 ‘사회주의의 현대화 강국’의 비전을 제시해 이와 맞서고 있다.
미국은 지도력 회복을 위한 관여와 부담을 동맹국들과 분담하는 한편,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미·중 전략 경쟁 구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강경 일변도보다는 비전통적 안보분야에서 일부 협력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쿼드(Quad)나 오커스(AUKUS) 같은 협력 체제를 활용하고, 이와 유사한 소다자 협력 체제 구축을 통해 다층적인 차원에서 대중국 견제 정책을 펼 것이다.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3연임을 계기로 중국은 시진핑의 장기 집권 기반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며, 대외적으로 권위주의 국가들과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특히, 중근동의 권위주의 국가들과의 대테러 동맹과 일대일로 협력을 통해 중국의 영향력을 제고하는 한편, 아프간 사태 이후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통해 대만 해협 등 동북아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미국의 동맹외교에 대응하고 대미 억제력을 높이려 할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러시아의 대응이다. 그동안 러시아는 냉전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강대국들 간의 합의가 없었다는 점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해 왔다.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주요 국가 간의 합의를 강조하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결국 미·중 전략 경쟁에서도 나름 목소리를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나타날 것이다. 러시아는 전통적인 지정학, 세계적 에너지 수급, 그리고 첨단기술 영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할 것이며, 이는 미·중 전략 경쟁의 또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다.
올해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사회의 패권 구도를 바꿔놓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이 한데 뭉친 자유진영과, 그 반대편에는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격에도 ‘기계적 중립’을 지키며 사실상 편들어주는 중국과 배후의 반미 국가들이 대치하고 있다. 시진핑과 푸틴이 서방을 상대로 ‘신냉전’을 시작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과 전개는 서방과 러시아 등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동북아에서도 북한의 도발 위협과 더불어 중국·러시아가 북한과 결속을 강화하는 양상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출범 이후 ‘민주주의 연대’를 강조하면서,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을 공유하는 이들 국가는 정서적 연대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러시아·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과 연대를 추구하고 있는데,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크게 증진시켰으며, 북한과도 ‘친서 외교’를 통해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역내 영향력 확대를 위한 경쟁을 본격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기존의 ‘진영 외교’가 다시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대한 체제·이념 공세와 함께 국제규범·가치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역내 동맹국뿐만 아니라 영국·캐나다·호주 등과 같은 우방국들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대중국 공세에 대해 러시아·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란과 중·동유럽국가(CEEC)들과 연대와 협력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격동하는 안보정세하에서 다양하고 갑작스런 선택의 딜레마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므로 한·미 동맹 강화를 전제로 국가이익, 정체성, 국제규범 등에 근거해 우리만의 분명한 원칙들을 마련하고 지켜나가야 한다. 아울러 실질적인 남북 관계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와 남북 대화를 분리하는 ‘투 트랙 정책’이 필요하다. 대북정책의 대상도 김정은 독재 정권과 북한 주민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북핵 위협은 국제사회를 설득해 제재의 유연성을 확보하면서 한·미 동맹으로 대응하고, 북한 주민 중심의 대북정책 추진으로 남북 협력과 북한 주민의 변화를 최대한 이끌어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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