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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행복을 위한 집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집의 따뜻함·정듦·익숙함은 장소와의 유대에서 비롯
자신만의 기준으로 행복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 중요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23 09:52:41
 
▲ 유영이 ‘다이얼로그: 전시와 도시 사이’ 저자
경제 상황이 악화되며 도시의 주요 공장이 문을 닫았다. 남편마저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후 주인공 펀(Fern)은 집 없이 밴을 타고 사는 유랑자, 노매드(Nomad)의 삶을 택한다. 땅에 뿌리를 내린 집에서 사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유랑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들을 그린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는 2020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는 등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관객들에게 잔잔한 여운을 남겨 준 작품이다.
 
특히 주인공의 삶을 통해 관객에게서도 집에 대한 생각을 이끌어 내는 장면이 인상 깊다. 오랜만에 만난 주인공의 옛 친구가 묻는다. “당신은 노숙자인가요?(You're homeless. Is that true?)” “아니, 난 물리적 집이 없을 뿐이야(No,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 주인공 펀(Fern)은 자신에게 없는 것은 홈(Home)이 아니라 하우스(House)라 답한다. 땅을 딛고 서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닐 뿐 그녀에게는 어디든 갈 수 있고 머물 수 있는 밴이 집으로 존재한다. 그녀가 살았던 도시는 쇠퇴했고 집은 버려졌지만,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지 못했다.
 
그녀는 길 위의 삶이 좋기에 물리적인 집(House)은 없지만 집(Home)은 있다고 자신있게 답하는 것이다. 옛 추억이 담긴 물건과 함께 밴에서 사는 인생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집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녀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대한다. 
 
집이 없는 이들, 떠도는 이들, 소속이 없는 이들은 그들이 스스로 소속을 거부한 것이지만 사회에서 거부당한 이들처럼 여겨진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주인공도 면접 자리에서 정규직이었다는 사실을 열심히 강조한다. 자리 잡고 앉아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그녀의 대사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집이라는 장소와 연관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행복에 관한 직관적인 느낌을 그 이유에 대한 논리적 이해로 바꾸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알랭 드 보통의 글이 미려하여 때론 당혹스럽기까지 하지만 이 문장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는 ‘행복의 건축’에서 행복이라는 느낌·감정·생각 등 무형의 존재를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대상화하려는 건축적 시도에 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이 장소와 연관되는 것은 삶이 상당히 추상적이기 때문에 조건화하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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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려도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이 선택한 집의 방식을 모두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고장 난 차를 수리하지 말고 새로운 차를 사라는 정비공의 권유에도 그녀가 오래된 밴을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내 손으로 고치며 정든 밴은 실제 그녀에게 땅에 고정되지만 않았을 뿐 홈이자 하우스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정착 대신 스스로 유랑을 선택했다. 이동하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집이 될 수 있다. [사진=필자제공 © unsplash]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닌 이상 우리는 투시도를 보듯 세상을 볼 수 없지만, 이상적인 대상화를 위해 투시도법이 생겨난 것처럼, 어디가 집이고 집이 아닌지에 대한 기준은 따뜻함·정듦·익숙함과 같은 장소와의 유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행복한 삶, 행복의 장소는 어디인가. 이에 대해 조금은 다른 접근법으로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힌두교의 승려였던 제이 셰티(Jay Shetty)는 승려의 삶을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명상을 가르치고 삶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유명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수도자처럼 생각하기’라는 책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모두의 목적인 동시에 그 누구의 행복도 아니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삶의 의미는 무언가를 추구하기보다 현재에 집중하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책 제목에 있는 수도자처럼 생각하는 방식은 현재를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의식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그는 장소의 중요성을 논하며 모든 장소가 갖는 에너지를 활용하여 우리의 삶이 장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권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어떠한 일을 할 때 우리는 그 일이 자연스러워진다고 느낀다. 각자의 장소를 만들며 스스로에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행복한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지을 수 있다. 힐링하기 위한 장소가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스스로에 집중하며 장소에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을 위한 장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있는 그대로 나를 본다는 의미에서 마음챙김·명상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유행처럼 퍼진 지도 몇 해가 되어 간다. 무엇에 상처받았는지 정확하게 규명하지 않더라도 상처를 다스린다는 의미의 힐링이라는 단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명약처럼 여겨진다. 힐링을 위해 떠나고 먹으며 또 다른 삶의 의식을 행하는 것 같이, 행복한 삶을 위한 노력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울창한 숲속을 거니는 경험이 힐링이 되었고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듣는 시간 또한 힐링으로 수식되고 있다. 숲·해변뿐만 아니라 카페·도서관·박물관까지 모든 공간이 힐링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소개된다. 힐링을 위한 특정한 길을 걸어야 하고 특정한 소리를 들으며 쉬어야 하는 다양한 방법론이 소개된다. 때론 행복마저 장소와 결합되어 하나의 상품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정착을 권유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말한다. 나는 지금이 좋고 행복하다고. 좋은 집의 조건은 그녀가 사람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하우스가 아닌 나만의 홈을 만드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행복과 여유, 사색이 상품화되는 시대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행복한 장소를 만드는 데에 집중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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