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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나만의 언어로 기록된 공간 데이터가 필요한 이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알고리즘 데이터의 시대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은 데이터 아닌 추억 연결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08 11:13:32
 
▲ 유영이 ‘다이얼로그: 전시와 도시 사이’ 저자
평생 떡 먹기와 평생 빵 먹기, 평생 음악 못 듣기 또는 평생 여행 못하기.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유행이 된 밸런스 게임의 현장이다. 왜 이런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 이런 특이한 질문이 생겨났는지 알 수는 없다. 평생·절대·오직 등,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5초 안에 선택하고 나면 친구들과의 끝없는 토론이 이어진다. 극단을 선택하고 나니 보이는 나의 취향, 그 안에서 우리는 각자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의 기준을 알게 된다.
 
짧은 질문과 빠른 답변. 나를 알게 하고 타인과의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없애기 위한 또 다른 질문이 있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 MBTI를 신봉하다시피 하는 이들은 16개의 유형을 모두 줄줄 외우며 유형 간 궁합을 근거로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사람과 대화를 나눠 보기 이전에 이미 서로에 대해 짐작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혹자는 경쟁 사회에서 바쁜 세대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한다. 같은 원리로 잘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받을 수 있는 상처 또한 가능성을 줄인다.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정의하지 않고 극단적인 질문 또는 16개의 유형 안에 맞추며 나를 탐구한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자칫 선을 그어 버린다. 마치 벽을 쌓고 담을 올리는 것처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다른 곳을 응시하며 서로 어긋나기에 바쁘다.
 
 
타인과 시선을 교류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존재는 나보다 스마트폰이 되어 간다. 수많은 앱을 통해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나와 연관된 데이터로 오히려 나보다 더 넓은 세상과 교류하며 내 주변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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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검색창을 열면 날씨가 먼저 등장한다. 이 시간대에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나보다 검색창이 더 잘 아는 듯하다. 알파 세대라 불리는 친구들 중에는 독특한 방식으로 쇼핑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분홍색 운동화를 가지고 싶으면 검색창에 몇 번씩 그 단어를 입력한다. 3시간 후 앱을 열면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내게 추천한 디자인이 나타난다. 쇼핑을 위해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보다 더 빠른 방식이라 효율적이라는 논리이다. 알고리즘이 평소 내 쇼핑의 양상을 알기 때문에 내 취향에 비교적 맞는 판단을 내려준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된다. 밸런스 게임과 MBTI를 통해 스스로를 유형화해 나가는 지금, 데이터는 이미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로 규정하기 참 어려운 분야가 있다. 바로 장소다. 단순히 2D와 3D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다. 장소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그 시간 속에 그곳에서 느낌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함께한 이들과 엮어 낸 추억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특정한 장소에 대한 강렬한 인식을 갖는 것은 건축적 요소보다는 그날의 상황과 사건에 기인한다. 어떠한 장소에 대한 취향을 갖는 이유는 그 장소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에 관한 우리의 감정과 생각·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미국 온라인 유통기업 아마존은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여 고객이 주문할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고객과 가장 가까운 배송센터로 미리 보내놓는 기대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내가 평소 이용하는 제품이 이미 나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역에서 나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자연스레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도 물류센터가 들어선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면서도 배송 시간을 줄여 서비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유통사들은 도심 물류창고를 선택한다.
 
 
그러나 장소에 대한 선호도를 분석하고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다. 물건을 원하는 시기에 배송받듯이 눈앞에 원하는 공간을 펼칠 수도 없다. 방법은 스스로 좋아하는 장소를 기억하고 분석하여 데이터를 축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선호하게 된 이유를 기억하고 싫어하는 장소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여 그 이유를 소거해 나가야 한다.
 
▲ 좋아하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묘사할 수 있을까. 나를 담는 공간에 대한 언어를 찬찬히 모아 가야할 때다. [사진=필자제공] © Marvin Meyer
 
공간과 장소에 대한 자체 데이터를 쌓아 놓으면 내게 맞는 집을 지을 때 그것이 빛을 발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집을 처음 지을 때 범하는 실수는 자신의 취향이나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정리하여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진다고 한다. 자신의 고민을 잘 정리하여 전달하는 건축주는 건축가와 진솔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다. 가치관의 차이와 감각의 어긋남에 대해 논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장소 데이터를 쌓고 분석해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건축가를 양성하는 곳은 많다. 정답은 없지만 체계를 갖추고 스스로 고민하며 정진하는 예술과 공학 그 모호한 사이 어디엔가 자리를 잡는 건축가들이 한해에도 몇천 명씩 배출된다. 반면 좋은 건축주를 위한 교육은 없다. 건축에 관심 있는 이들은 책과 전시 등 각종 매체를 통해 스스로 공부하며 쌓아 올린 고민에 의존한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집에 대한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있을까. 좋아하는 장소가 갖는 이유를 차근차근 톺아본 이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좋은 곳·유명한 장소에 가서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지금, 태그에 붙은 장소 이름 이외에 나의 감정과 기억을 기록해 보기를 권한다. 장소와 연관되어 쌓인 나만의 단어들이 훗날 내 집을 위한 재료가 되어 기둥을 이루고 지붕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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