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가 바르바라, 그날 밤 브레스트에는 줄곧 비가 내리고 너는 꽃처럼 환히 웃으며 빗속을 걷고 있었다.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브레스트에는 줄곧 비가 내리고 우린 거리에서 마주쳤지. 웃음 짓는 너를 보며 나도 같이 웃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바르바라. 우린 서로를 몰랐지만 그래도 기억하는가,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한 남자를….”
자크 프레베르의 시 ‘바르바라’는 이렇게 시작된다. 프레베르는 생텍쥐페리·알베르 카뮈·장 폴 사르트르를 제치고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문인으로 꼽히는 시인이다. 이브 몽땅이 부른 샹송 ‘고엽’의 가사를 비롯해 그의 시들에 스며 있는 세련된 서정성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변변한 학력도 없었던 프레베르는 20대 중반에 시나리오 작가·샹송 작사가로 예술계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프랑스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을 창조했다고 평가받는 마르셀 카르네 감독과 함께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천국의 아이들’을 비롯해 ‘제니의 집’ ‘안개 낀 부두’ ‘밤의 문’ 등의 명작을 만들고 기존의 시들을 조롱하듯 발랄한 느낌의 시를 써 냈다. 그는 당시 프랑스 문단의 신세대 작가였다.
“나는 나, 난 이렇게 생겼어요. 웃고 싶을 땐 그저 마음껏 웃고 날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죠. 그런데 그게 내 잘못인가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나, 나는 이렇게 살아요. 더 이상 뭘 어쩌겠어요? 내게서 뭘 바라나요? 난 즐겁게 살려고 태어났어요. 무엇과도 내 삶을 바꿀 수 없죠. 그렇다고 당신이 어쩔 건데요?”
‘나는 나’라는 프레베르의 이 시를 떠올린 것은 회사원 시절 신제품 개발의 기초자료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고객 특성을 분석할 무렵이었다.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 주장하는 이 시의 언어가 당시의 주 고객층, X세대와 N세대의 특성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 논문까지 찾아 읽으며 열심히 탐구한 결과 X세대는 ‘부(富)의 효용에 눈뜬 최초의 세대’ ‘자기 현시(顯示) 욕구’로 정의되며 그것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패션’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냈었다. N세대의 특징은 거기에 ‘오타쿠 성향’이 더해진 것이었다.
‘나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감동해 밥 먹듯 야근을 하고, 영업사원들에게 제품 소개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마이크를 사다가 오디오 앰프에 연결해 발성 연습을 하고, 제품 소개가 영업사원 세뇌교육으로 변질돼 “부흥회 목사 같다”는 조롱 섞인 뒷말을 들으며 극성을 떨던 동료가 있다. 경력도 경험도 없는 자신을 덜컥 채용해 준 회사가 고마워서였다.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였다.
‘나 자신’이 중요한 X세대 이후 세대들과 달리 베이비붐 세대는 누군가를 위해, 가족과 직장을 위해 헌신했고 그것을 기쁨으로 생각했다. 그 ‘헌신’ 밑에 깔린 것은 상대를 향한 근원적인 ‘선의’였다. 그런 그들이 바로 윗세대인 전후세대와 함께 가난한 집안의 무서운 아버지 같았던 대통령, 그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삼촌 같았던 대통령을 앞세워 우리 경제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는 헌신적인 그들이 산업현장에서 다 떠나고 없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산업현장에서는 그들이 밀려나고 없지만 정치권에는 아직 베이비붐 세대가 다수 남아 거대 양당을 이끌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가 차기 당 대표의 조건으로 ‘MZ세대의 지지’를 말하는 바람에 파문이 일고 있다. 다가올 총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MZ세대가 정치권에선 모시기 어려운 상사와도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여야가 서로 질세라 MZ세대 비위맞추기 경쟁을 벌이는 낯 뜨거운 추태가 연출되기도 한다.
20대 시절 우리가 가장 경멸한 것은 우리가 만든 은어‧비속어를 쓰며 젊음을 흉내내고 젊음에 아부하는 어른들이었다. 정치권에서 정말로 MZ세대의 지지를 원한다면 아부를 멈추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앞선 세대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MZ세대는 ‘욕망’과 ‘불안’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핍’에 기인한다. 결핍이 욕망을 낳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다시 결핍 상태로 그들을 몰아간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아부가 아니라 욕망을 실현시켜 줄 비전과 불안을 잠재울 정책, 그것을 제시해 주는 믿을 수 있는 어른이다.
정치권에 같은 또래의 젊은이를 영입해 내세운다면 MZ세대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건 참으로 한심한 발상이다. 우리에겐 국민을 향한 선의로 가득한 베이비붐 세대의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있다. 정부가 그들을 위해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정책으로 보여 준다면 MZ세대는 현 정권을 지지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위한 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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