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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장충단비 옆에 있는 문화재 밀매업자의 비석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09 11:10:17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려역사저널 편집인
장충단이 복원되지 못한 이유는 역사의식 없는 군사정권과 재벌간의 정경유착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의식 없기는 이후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현재까지 어느 정부도 항일의 상징이었던 장충단의 얼을 기리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래 두 건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문화재 밀매업자의 비석
신라호텔이 세워진 후 장충단 관련 유적은 모두 사라졌고, 남은 거라고는 1969년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장충단비만이 당시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현재 장충단공원에 외롭게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로 뒤편에 두 개의 장명등(長明燈)과 '第一江山 太平世界'라는 글이 새겨진 작은 비석이 마치 장충단비와 한 세트인양 같이 세워져 있어, 관람객들에게 마치 장충단과 관련 있는 비석으로 인식되고 있다. 뒷면에는 ‘단기 4296년(1963) 5월 15일에 裵聖寬(배성관) 근립(謹立)'이라는 비석을 세운 사람의 이름과 날짜가 새겨져 있다.’
 
▲장충단과 아무 관련 없는 배성관의 개인비석. [필자 제공]
 
이 비석을 세운 배성관은 뭘 했던 사람이기에 이렇게 장충단비와 함께 세워져 있는 걸까? 또 마치 세상살이에 초연한 듯한 도인풍(道人風)의 문구가 비석에 남겨진 사연은 무엇이었을까? 장충단과 깊이 관련된 인물이 아니고서야 어찌 여기에 비석 세우기가 가능이나 했겠는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았다.
배성관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기인 또는 괴짜로 불렸던 유명한 골동품상이었다. 시중에 돌아다니던 신라시대 사리탑을 수만 원에 사서 일본인들에게 수백억 원에 팔았는데, 나중에 총독부에서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1935년 7월 11일자 ‘매일신보’에 보도되기도 했다. 또한 충북 괴산에 있던 석조부도를 무단으로 반출해 판매하는 등 일제 때 문화재 밀매업자였다.
해방 후에도 서울 남대문로에서 골동품 가게를 열어 도굴되어 떠돌아다니던 문화재를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가 6.25 전쟁이 터지자 그의 부인과 자녀 6명 모두 유엔군의 포격에 맞아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이층점포도 순식간에 화염에 싸여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이라고는 엉겁결에 들고나온 도금불상 두 점과 서화 한 뭉치뿐이었다.
 
 
▲ 1964년 11월에 육사교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배성관. [필자 제공]
 
그 후 그의 심경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잃어버린 6남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서울 근교 봉원사에 거액을 기증해 불당과 석불을 세우고 불도에 귀의해 절에서 기거했다. 그는 인생무상을 느꼈는지 일평생 간직해오던 상투도 잘라버리고 스님처럼 머리를 깎았으며 입고 있는 옷도 승복 비슷한 것으로 보아, 속세의 때 묻은 물욕과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훨훨 털어버리고 인생무상을 향해 정진하는 수도자 같았다고 한다.
그는 세상살이에 달관했는지 가지고 있던 재산을 여기저기 기증하거나 사찰에 시주하기 시작했다. 거액을 희사해 봉원사에 불상도 세웠으며, 특히 육사 박물관에 1959년부터 약 10년간 모두 92점의 군사 관련 유물을 기증했다.
그 중 영등포구 대방 초등학교 교정에 있던 연령군 신도비(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3호)가 육사로 옮겨진 것도 바로 그의 기증 때문이었다. 신도비가 너무 크고 무거워 애로가 있자 며칠 후 군부대에 의뢰해 이동시켰다고 한다. 또한 1967년 2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에 8점을 기증한 기록이 있다.
그가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8년이니 그야말로 인생의 막바지를 나름대로는 선행(?)으로 일관했던 셈이다. 철저하게 세속적이었던 골동품상 배성관 노인이 뒤늦게 '제일강산 태평세계' 비석까지 새겨 장충단공원에 남겨놓은 진정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혹여 그것이 자신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지게 된 이 땅의 문화재에 대한 속죄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 관련 내용은 ‘월간문화재’ 1973년 9월호에 수록된 이강칠 선생의 "군사유물수집의 독지가 배성관씨” 참조)
배성관의 비석이 세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있던 군사정권 시절 군사 관련 유물을 기증받은 군인들이 그에게 베푼 감사의 보답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항일의 상징인 장충단비 옆에 장충단과 아무 관련 없는 그것도 일제 때 문화재 밀매업자의 비석을 세워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문제는 그 정권이 끝나고 40년이 지났어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그럴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로만 역사를 외치지 말고 주변의 이런 작은 것부터 제대로 바로 잡아야 나라의 역사가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의식 있는 누군가가 서울시장에게 이 비석의 이전을 제안해주었으면 한다. 봉은사나 육사에 있어야 할 비석이다.
 
▲ 서울시가 전통찻집으로 임대한 한옥을 장충단기념관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필자 제공]
 
한옥 건물을 지어 전통찻집으로 임대한 서울시
공원 입구에서 ‘장충단비’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리틀야구장 못 미쳐 이준 열사 동상 앞에 한옥 건물이 한 채 있다. 이 건물은 서울시가 시비로 지어 위탁업체에 임대해 전통차를 팔고 가끔 국악 공연도 한다고 한다. 물론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지었다고 하지만, 장충단의 의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서울시의 이 같은 몰역사적인 행태를 지적하고 있다.
신라호텔이 세워짐으로써 장충단을 복원할 길이 요원해졌다면, 서울시는 지금의 한옥 건물을 찻집으로 임대할 것이 아니라 ‘장충단기념관’으로 사용했어야 옳았다. 실제 장충단이 있던 위치와도 가깝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물론 삼성그룹이 호텔 뒤쪽에 작은 기념관이라도 하나 지어준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일제의 무력 침탈로부터 나라를 지키다가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정신은 일제에 의해 말살당했으며, 해방 후에는 역사의식 없는 못난 후손들에 의해 완전 파괴되어 버렸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경제개발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변할 수도 있으나, 잘살게 된 지금도 작은 기념관 하나 없이 장충단의 호국 정신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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