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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재의 지구촌 IN & OUT
언제까지 ‘옳지 않다’고 한탄만 할 것인가
열탕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 가지 말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손잡아 봅시다
이혁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30 10:10:46
 
▲ 이혁재 수석논설위원
전에 봤던 미국 영화에 납치당한 어린 소녀가 항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It’s Not Fair!”
 
우리말로 “옳지 않아요” 혹은 “말도 안 돼” 정도의 의미일 것이다. 6·25는 경험 못 했지만 4·19, 5·16, 10월 유신, 10·26, 12·12, 광주민주화운동, 88올림픽, 2002 한·일 월드컵,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까지 경험한 ‘라떼’에게 그 장면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강도가 머리에 총을 들이대는데 “옳지 않다”고 외치다니. 옳지 않은 게 백 번 맞기는 하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지나고 나면 말도 안 되는 짓거리가 눈에 보이지만 당시엔 어쩔 도리가 없던, 문제로도 안 보였던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 살아온 세상이 항상 공평하거나 옳은 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폭설로 난리가 난 미국 뉴욕 주의 안전담당 책임자가 “매우 슬프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던 며칠 전 TV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하나는, 세상사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점이다. 그건 바로 죽음이다.
 
10여 년 전 지방 도시를 취재했을 때의 일이다. 그 도시 시장은 행정고시 출신의 깐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도시에 폭우가 쏟아진 여름 어느 날 밤 문제가 터졌다. 봉사활동 하러 내려온 대학생 10여 명이 산사태로 사망한 것이다. 그 도시에 도착한 당일이었고 “내일부터 열심히 봉사하자”며 족구하고 술 먹고 자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다. 며칠 후 부모들이 시장 집무실로 몰려갔다. 통곡하며 하소연하는 어머니들도 있었다. 고시 출신 시장은 평소처럼 합리적으로, 그리고 눈치 없이 말했다. “이러셔도 해결되는 거 없습니다. 먼저 사고 원인부터 조사하고 그 다음에….”
 
시장은 질타당했고 집무실은 엉망이 됐다. 사람이 죽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말이다, 희생자 문제를 매듭짓고 사고를 최종 수습한 건 유족들을 격분시킨 그 시장이었다. 물론 그게 최고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뜨겁고 축축했던 그 여름 목격했던 건, 살아남은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세상을 살아가려면 ‘It’s Not Fair’를 외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무결점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지도 모를 매우 훌륭한 세상을 꿈꾸며 죽어라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소연만 하다 보면 훌륭한 세상 볼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제안한다. 예측하기 쉽지 않고 예방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참사였다면 비판은 계속 하더라도, 동시에 무너진 사회 재건과 재발방지에도 힘쓰자는 것이다. 우리 아들 딸들은 같은 참사를 당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제안 또 하나. “뜨거운 물 속의 개구리는 죽는 것도 모른 채 천천히 죽어 간다”는 ‘열탕 속의 개구리’ 교훈이 있다. 그러니 이태원 참사 같은 거대하고 직접적인 사고는 물론 ‘It’s Not Fair’, 즉 우리들을 천천히 죽이는 뜨거운 물 같은 ‘모순’들도 감시하고 살피자는 것이다. 우리 행복을 무너뜨리는 크지 않은 모순들을 향해 “옳지 않다”고 외치자는 것이다. 그런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가 오봉역 열차 사망 사고다.
 
지난달 5일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는 후진하던 열차에 코레일 직원이 치여 숨졌다. 철도 노조는 사고 발생 후 줄기차게 “정부가 안전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며 성토하고 시위했다. 그런데 사고 조사를 하면서 첫 번째 모순이 드러난다. 열차 운행은 수백 명의 안전이 달린 문제다. 그러니 기관사를 포함 모두가 정신 바짝 차리고 안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사고 조사 과정에서 기관사가 운전 중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인력 부족과 사고는 상관이 없었다.
 
두 번째 모순은 코레일 노조가 ‘인권침해’라며 반대해, 기관사를 감시할 CCTV는 설치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CCTV는 기관차 앞쪽 철로만 찍히도록 각도가 맞춰져 있었다. 그럼에도 사고 당시 기관사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앞쪽 철로를 찍던 CCTV에 기관실 앞 유리창이 찍혔고 그 유리창에 기관사가 휴대전화 조작하는 모습이 반사돼 찍혔기 때문이었다.
 
개구리를 서서히 죽이는 열탕처럼 우리 사회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It’s Not Fair’는 허다하다. 손잡고 한 발씩 공정과 개선을 향해 나아갈 때 그런 옳지 않음과 불공정은 줄어든다. 비난하고 책임 묻는 건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론 좋아지지 않는다. 예측가능한 사고는 미리 막고, 벌어진 잘못은 절대 되풀이되지 않도록 입 말고 몸으로 노력하고 노력해 막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들딸 눈에서 피눈물 안 나는 세상이 만들어진다.
 
해가 가기 전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 드린다. 서른 넘은 아들 하나, 20대 후반 딸 하나 키우는 아빠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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