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에서 거둔 300억 달러 투자유치를 우습게 본다. “이란은 UAE의 주적”이란 윤 대통령 말꼬리만 잡으며 “외교 참사가 벌어졌다”고들 한다. 야당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 외교가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국제사회가 얼마나 피 튀기는 전쟁의 연속인지 아는가. 날이면 날마다 여의도에서, 그리고 광화문과 용산의 아스팔트 위에서 떠들듯 무책임해도 된다고 생각 하나. 그러니 중국 가서 ‘혼밥’이나 하는 것이다.
긴 말할 것 없이 예를 들자. 196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은 극히 중요한 현안이었다. 그래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6월 베트남으로 날아가 응우옌반티에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회담 후 △북베트남의 연합정권 거부 △미군 감축이 발표된다. 당시 발표내용만 보면 회담이 부드럽게 잘 된 것 같다. 하지만 후일 나온 키신저 전 국무장관 회고록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 피 튀겼다.
‘닉슨은 회담장에 미리 와 있었다. 나중에 들어와 닉슨을 본 티에우 베트남 대통령은 울그락불그락했다. 닉슨은 역대 중국 황제가 앉을 법한 거대한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고, 티에우 대통령을 위해 준비된 의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볼품없는, 지금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의자였기 때문이다. 티에우가 존경스러웠던 것은, 막강한 미국 대통령을 기다리게 한 뒤 어디선가 큰 의자를 찾아와 앉은 후에야 당당히 회담을 시작한 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받은 대접도 티에우보다 낫지 않았다. 닉슨은 취임하자마자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시켰다. 위기감을 느낀 우리 측의 끈질긴 요청에 1968년 8월 한미정상회담이 성사된다. 당시 미국의 한 호텔에서 열린 회담 모습은 이동원 전 외무장관의 회고록에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닉슨이 최소한 호텔 로비에서 맞아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호텔 로비에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내릴 때도,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닉슨은 나타나지 않았다. 방에 들어갔는데 왼쪽 큰 문이 열려서 보니 그쪽 방구석에 선 채 맞이하는 것이었다. 저녁식사 땐 시시껄렁한 자기 고향 친구들 불러다놓곤 같이 식사하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을 때 다리를 꼬고 앉은 건, 못사는 나라 대통령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였다. 그걸 아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있다.
교훈 1. 세상은 공평치 않다. 국가 간에는 절대 그렇다.
우크라이나 사태 때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한테 직설적으로 협박당했다. 존슨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인 2022년 2월1일 우크라이나를 찾아가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러자 하루 뒤 푸틴이 전화를 걸어왔다. 존슨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엄청난 참극이 벌어질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푸틴은 “당신이 다치는 건 원치 않지만 미사일을 쏘면 (영국까지) 1분도 안 걸릴 것”이라고 매우 평온하게 협박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9일 후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이 모스크바로 날아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회담한다. 월러스는 당시 회담이 매우 복잡했다고 했다.
“쇼이구 장관은 우크라이나 침공은 없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거짓이란 걸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쇼이구는 자신이 한 말을 내가 믿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면서도 계속 거짓말을 했다. 하여간 그는 거짓말을 해야 했고, 하여간 나는 믿는 척해야 했다.”
러시아 국방장관이 하고 싶었던 말은 “러시아는 막강하다”는 것이었다. 월러스 장관은 “러시아측이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걸 보고 곧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리라는 걸 확신했다”고 회고했다.
교훈2. 국제사회 주인공들은 젠틀맨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하이에나이며, 약한 먹잇감을 찾아 헤맨다.
다시 UAE 얘기.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은 UAE의 무함마드 왕세제와 전화하려 했다. 하지만 통화는 계속 미뤄졌다. 왕세제 측은 일단 잡은 통화 약속 시간을 미뤘고 날짜까지 바꿔버렸다. 이 대통령는 당시 바라카 원전 수주를 부탁하려 했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프랑스가 수주하는 걸로 이미 결정돼 통화를 피하는 것 같으니 그만 하시라”고 이 대통령을 만류했다. 하지만 그는 "전화한다고 손해볼 건 없지 않느냐"고 했다.
마침내 전화를 받은 무함마드 왕세제는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라고 싸늘하게 물었다. MB는 세일즈맨 뺨치게, 뭐라도 팔아보려 했다. 원전 외에도 경제·교육·안보 협력 파트너로서 한국의 장점을 부각했다. 사절단을 파견해 직접 설명 드리겠다고 했다. 형제 관계를 맺고 싶다고 했다. 닷새 뒤 왕세제가 전화를 걸어왔다.
"대통령님과 통화 뒤 입찰 결정을 좀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프랑스로 완전히 기울었던 판세가 전화 한 통화 덕에 한국 승리로 돌아선 순간이었다.
교훈 3. 전화한다고 손해 볼 것 없다. 혼밥할 여유는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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