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공지능(AI) 관련 번역서를 냈었다. 번역하며 인상 깊었던 건 2가지다.
첫째 ‘워라밸(Work-life balance)’. 저자는 ‘AI 세상에서는 워라밸 따위 꿈도 꾸지 말라’고 호통쳤었다. “직장과 가정 모두 중요하다”는 워라밸적 도덕주의 따위 존재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AI가 모든 직장에서 인간을 쫓아낼 텐데 평화롭게 먹고 산다고? 한가하시네” 같은 뉘앙스였다. AI 시대에는 ‘워크 애즈 라이프(work as life)’, 즉 삶을 일처럼, 일을 삶처럼 취미생활 하듯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고 예측했다.
두 번째 기억나는 것이 ‘2050’이란 숫자다. 저자는 “AI가 2050년 전후로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번역을 하면서 ‘우리에겐 아직 30년 정도 시간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2023년을 사는 사람들은 ‘2050년에 가서야 인류가 망할 것’이란 전망이 엄청 낙관적이었음을 안다.
정신없이 발전하는 AI 관련 글을 한번 써 보려고 자료를 모아 봤는데 순식간에 200자 원고지 3만 장을 넘어섰다. 변하는 AI 세상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고, 겨우 이해했다 싶으면 금방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결국 내 능력을 넘어서는 AI 윤리나 저작권 문제 같은 건 안 다루기로 하고 AI가 이뤄 낸 업적, 앞으로 이룰 성과를 겸손하게 소개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AI, 그리고 과학은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이뤘을까. 개인적 관심 순으로 조금만 소개한다.
장애인용 AI 의족이 나왔다. 기존 의족은 2시간 정도 차고 다니면 아파 온다고 한다. 그래서 의족에 AI를 달아 의족과 다리 근육 간 간격, 밀착압력을 조절해 주는 장치가 한국에서 개발됐다. 척수에 손상을 입은 사람의 기립과 보행을 돕는 ‘엑소아틀레트’라는 재활로봇도 국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택배 노동이 사회 문제가 되자 CJ대한통운은 경기도 스마트 풀필먼트 센터에 택배 배송 로봇 126대를 도입했다. 근무자는 작업장에 선 채 터치스크린만 누르고, 로봇이 상품을 창고에서 꺼내 포장하고 송장을 붙여 자동으로 출고한다. 근무자는 꼼짝 안 한다. 경기 하남시 SSG닷컴 물류센터인 PP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지만 AI와 로봇 덕에 하루 240만 개의 상품이 처리된다.
여기까지가 AI와 과학이 실현한 세상의 모습 극히 일부다.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까. 이번에도 가까운 미래의 정말 일부만 보자. 3년 후부터 우정사업본부 집배원 대신 로봇이 편지와 고지서·소포 배달을 시작한다. 최전방 철책선에선 병사 대신 AI가 통제하는 드론 로봇이 무인 초소에서 경계를 선다. 올해 경계 시스템의 개념을 완성하고 내년에 전방 부대 중 한 곳에 실제로 설치한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폐기된다. 공사현장에 AI 로봇만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는 나무판자를 들어 올려 계단과 비계(飛階) 사이에 임시 다리를 만들고, 공구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며, 균형을 잃지 않고 비계 사이를 점프해서 이동하며 물건을 나른다.
최첨단 핵융합을 연구하는 우리의 ‘KSTAR’도 주목된다.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 생성을 연구 중이며, 원전보다 에너지 효율이 3배 높게 전기를 생산한다. 그런데도 방사성 폐기물이 안 나온다. 3년쯤 후 완성이 목표다. 전기요금이 폭락할 것이다.
한·일 간에도 영향 미친다. 일본은 올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오염수를 방류한다. 그런데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물 2000t 중에서 방사성 물질 한 방울 분량을 검출해 내는 능력을 이미 갖췄다.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한국·미국·프랑스·스위스 등에 후쿠시마 오염수를 보내 검증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후쿠시마 오염수가 한국 해역으로 흘러들어 올 가능성도 시뮬레이션 했고, ‘10년 뒤 삼중수소가 ㎥당 0.001㏃(베크렐) 정도 국내 바다에 유입될 것’이란 결과가 나왔다. “현재 기술로는 검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소량”이라고 KINS는 설명했다.
개인적으론 챗GPT가 연설문을 썼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 미국의 오친 클로스 의원은 의회에서 "우리는 미국이 AI 연구개발에서 선두 지위를 유지하고 기술 진화가 제공하는 여러 가능성을 책임 있게 탐색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 같은 국제 파트너와 협력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AI가 쓴 이 연설문에선 AI가 쓴 티가 나지 않았다.
그 뉴스를 보고 ‘혹시 국회의원이 없어지는 것 아닐까’ 생각했었다. 사람 의원이 조만간 뭔가 보여 주지 못하면 퇴출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희망스럽게도’ 사람 의원이, 월급 안 받고 외유 안 나가고 열심히 일만 하는 AI를 넘어설 가능성은 전무에 가깝다. 우리의 오랜 골칫거리를 삭제해 줄 과학 만세, AI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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