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토요일에 안쏘니가 “오늘 러퍼버러 시장이 서는 날인데 가 볼까” 하고 물어 왔다. 이진은 ‘영국에도 시장이 선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선뜻 따라나섰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영국의 시장 문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친근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영국 마을에 시장이 서게 된 역사는 700년 정도를 거슬러 올라가 해당 지방 관청이나 국왕으로부터 시장 개업 특허장을 받아 낸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특허장에는 특정한 요일을 명시해 그날 장을 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가까운 이웃 마을의 장날과 겹치지 않게 하여 그 마을만의 독점 상권을 보장받았다 한다. 장날이 되면 야외에 마련된 노점에 농부들은 가축과 채소와 곡식을, 상인들은 갖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와 노점 자릿세를 내고 물건을 파는 것이 영국 전통 시장의 모습이다.
영국 레스터 주에 있는 러퍼버러에서는 목요일과 토요일마다 시장이 열린다. 레스터 주는 영국에서 인도인과 파키스탄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인지 러퍼버러 시장에서는 특별히 인도와 파키스탄 전통의상과 옷감·식료품을 많이 볼 수 있다. 시장의 규모도 제법 커서 많은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그뿐만이 아니라 터키의 명물 중 하나인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로부터 비스킷 공장에서 저가로 사 온 듯한 부서진 과자들(Broken Biscuits)까지 품목이 다양하다. 그래서 러퍼버러 시장은 영국의 여느 전통 시장과 달리 시끌벅적하고 시장 풍경도 흥미진진한 것 같다.
상인들이 손님을 끄느라 시장 여기저기에서 이래저래 상품을 선전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언뜻 한국의 시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그 와중에 바나나가 층층 선반에 가득한 노점을 지나노라니 물건 주인이 “세상에서 최고인 바나나!” 하며 냅다 소리를 치는 바람에 놀라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 바나나 상인의 반복되는 외침은 모퉁이를 돌아 다른 골목으로 접어들 때까지 계속 들려왔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음 번에 시장에 갔을 때도 그 바나나 장수는 변함없이 “세상에서 최고인 바나나!” 를 외치고 있었다.
러퍼버러 시장에서의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경험은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노점이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할 때 생긴 일이었다. 망고를 파는 노점을 지나는데 상점 주인이 “망고 한 상자에 1 파운드!” 하며 외쳐대고 있었다. 진짜 가격이 아니라 일종의 상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해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주로 채소나 과일 장수 중에 그날 물건을 다 팔지 못하고 남는 것은 버려야 할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버리느니 떨이로 한 상자에 1 파운드를 받고라도 마지막까지 팔아 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날 우리는 열 개가 넘게 담긴 망고 한 상자를 단돈 1 파운드에 사 왔다. 한국 돈으로 2000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일반적으로 영국의 시장들은 한국 시장에 비해 규모가 턱없이 작고 한국 시장의 다채로움과 역동성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어 지루하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동대문 시장이 외국인들에게 관광의 명소로 떠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안쏘니가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하루는 동네 시장에 함께 들렀다. 이때가 마침 구정을 며칠 앞두고 있던 터라 시장은 어느 때보다 볼거리로 넘쳐 났고 통로를 지나갈 틈 없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런 시장의 풍경을 생전 처음 구경하는 안쏘니는 보이는 것마다 신기한지 질문 공세를 퍼부어 댔다. 그러다가 떡 방앗간을 지나다 걸음을 멈춘 안쏘니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을 넋을 놓고 서서 바라보았다. 떡국용 가래떡이 밧줄처럼 줄줄 나와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고무통에 차곡차곡 쌓이는 장면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는 떡 만드는 광경을 한동안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Pound a bag to clear!” (떨이 한 봉지에 1 파운드)
영국 시장에서는 오후 4시경 시장을 닫을 시간이 되면 주로 채소나 과일 장수들이 “떨이 한 봉지에 1파운드!” 하며 외치는 소리를 간혹 들을 수 있다.
“Best bananas!”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바나나)
바나나 장수가 손님을 끄느라 자신의 바나나를 “세상에서 최고인 바나나!”라고 선전하며 외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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