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이란 무엇일까. 알다시피 그것은 불능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존재의 자율을 상실하고, 마음의 근육이 녹아내리고, 액체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보이지 않는 물길 따라 한없이 흘러가 버리게 되는 것. 그리고 그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
김선오의 산문집 ‘미지를 위한 루바토’에 실린 매혹에 관한 글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작가 토마스 만도 ‘베니스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에서 매혹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아셴바흐는 윤리와 이성으로 스스로를 단속하며 살아온 중년의 작가다. 그런 그가 베니스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타치오라는 미소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 날 기다린 건 바다와 해변이 아니었구나. 네가 머물러 있는 동안 나도 여기에 머물러 있겠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아셴바흐는 끊임없이 소년을 지켜본다. 그리고 소년의 주변을 떠나지 못해 콜레라가 창궐한 베니스에서 죽음을 맞는다.
“아셴바흐는 소년의 완벽한 아름다움 앞에서 전율을 느꼈다. 내성적인 분위기의 창백한 얼굴, 우아하고도 신성한 진지함을 담은 그의 얼굴은 가장 고귀했던 시대의 그리스 조각품을 연상시켰다. 그것은 가장 완벽하게 형식을 완성시킨 모습이었다….”
토마스 만이 묘사한 타치오의 모습은 로마제국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평생을 바쳐 사모했다는 미소년 안티누스를 연상케 한다.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실제로 그런 미소년을 찾아내 타치오 역을 맡겼다. 스웨덴 출신의 배우 비요른 안드레센이다. 지금은 흰 수염을 기른 인도의 요기 같은 모습으로 변했지만 예전의 비요른 안드레센은 만화의 주인공 같은 비현실적 외모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실제로 일본 애니메이션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은 그를 모델로 해서 만든 캐릭터라고 한다.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1971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저주받은 자들’ ‘루드비히:신들의 황혼’과 함께 ‘탐미주의 3부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일반인들 사이에선 아름다운 화면과 함께 이어지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와 주인공 타치오를 연기한 배우 비요른 안드레센의 특별한 외모로 더 유명하다.
사랑은 대부분 매혹에서 시작된다. 사랑이라는 몰입의 커뮤니케이션 첫 단계인 매혹의 과정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것은 상대가 발산하는 이미지의 힘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힘에서 매혹·사랑으로 이어지는 몰입의 공식은 개인 간의 사적 관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정치라는 공적 행위 또한 이미지를 통해 대중을 설득하고 매혹시켜 가는 과정이다.
정치 행위에서 이미지가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유권자를 나의 지지자로 만들기 위한 매혹의 과정에서 상대는 나를 만나본 적도 없고 내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개인들이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지를 통한 공략이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 우리나라 양대 정당은 이미지 망치고 스타일 구기는 망조의 길을 달리고 있다. 국민의 반수 이상을 실망시킨 조국 사태에 이어 당 대표의 예닐곱 가지 범죄 혐의·돈 봉투 사건 등으로 훼손될 대로 훼손된 더불어민주당은 그렇다 치고 국민의힘 또한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에선 최근 지지율이 떨어진 게 전광훈 목사를 둘러싼 설화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이미지를 크게 구긴 건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였다. 별 잘못도 없고 이준석 전 대표처럼 골치 썩일 이유도 없어 보이는 나경원 전 의원을 끌어내린 사건 말이다. 나 전 의원이 “솔로몬 재판의 진짜 엄마 심정”이라고 한 말에 다수의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공감한 것을 국민의힘은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훼손된 이미지를 복구할 특단의 아이디어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하나둘씩 오점을 더해 가는 그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오는 걸까.
또 하나,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국민의힘 쪽 패널은 제발 문장 하나를 한 번에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한다. 사투리 억양의 중년 아저씨가 말 한마디를 한 번에 못하고 더듬거리는데 누가 국민의힘에 호감을 느끼고, 희망을 갖고, 매혹될 수 있겠는가.
정치는 결국 이미지로 한다는 것, 이 단순한 진리를 혹시 잊었다면 상기해 주었으면 한다. 못난 국민의힘, 사악하고 흉한 민주당이 그러잖아도 사는 게 힘든 우리를 자꾸 짜증나게 한다.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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