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위지(經天緯地)’, 이 말은 ‘온 천하의 일을 조직적으로 잘 계획하여 다스림’을 뜻한다. 나아가 그만큼 세계정세를 정확히 읽고 한 나라를 다스릴 만한 걸출한 인재를 일컫기도 하다. 건국사를 자학하는 패배주의적 역사관이 팽배한 시대에 필자와 같은 청년 세대는 국가·사회적 롤 모델이 부재하는 어두운 세계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없는 아들이 있을 수 없듯이 청년들이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의 뿌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매도된 국부(國父)의 자화상을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한 인물에 주목해야 한다.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다.
올해는 한·미동맹이 70주년을 맞는 위대한 해이다. 정확히 말하면 1953년 10월1일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만 70년을 맞이하는 해인 것이다. 또한 10월1일은 6·25 전쟁 중에 우리 국군이 처음으로 3.8선을 돌파해 평양으로 진격한 국군의 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이 조약의 방패 효과 덕분에 전쟁 재발의 위험이 상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장애 속에서도 해외 투자자금을 안정적으로 유치할 수 있었다. 또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3% 미만으로 유지하면서도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가진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큰 그림의 뒤에는 ‘경천위지’의 설계자인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그런데 일부 좌파 정당의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의 인물들은 이러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범죄에 가까운 매도와 비난을 멈추지 않고 있다.
22일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가시 돋친 비난은 이들의 삐뚤어진 역사관을 잘 보여 준다.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의 한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을 일컬어 “내란 목적 살인죄를 저지른 범죄자” “내란의 수괴를 기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 몇몇은 “독재자를 기념하겠다는 것은 헌법을 부인하는 것”이라거나 “민주주의 유린자”라는 맹독(猛毒)에 가까운 힐난을 퍼부어댔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 투쟁에 나서던 시대의 상황을 바로 알게 된다면 이러한 모함은 불가능할 것이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공산 소련의 확장으로 인해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우크라이나·불가리아 등의 동유럽 전역과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몽골과 중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에 적색 경고등이 켜진 때였다.
그만큼 혼란한 시대에 이승만 대통령은 유물론이자 무신론 사상인 공산주의가 교회 조직을 파괴하고 모든 윤리와 도덕 체계를 지워 버리면 결국 남는 것은 평등이나 해방이 아니라 생지옥 상태일 것임을 정확히 진단했다. 그리고 인민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건국을 완성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 중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1950년 3월 농지개혁은 ‘자유민주 경제 혁명’이었다. 5000년 우리 역사상 최초의 농노 해방이자 진정한 신분 차별의 철폐였던 것이다. 그 결과는 단 3년 만에 전 농지의 95.7%를 자작농이 소유하게 된 세계적인 성공 사례였다. 그리고 1950년 5월에 분배농지 예정 통지서를 전 농민에 발급·배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쟁 중에 우리 농민들이 공산당의 인민해방 선전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자유민주 체제를 수호하게 하는 원동력을 심은 것이다.
또한 전쟁 직전이었던 1949년 6년제 의무 교육제를 도입하여 1945년에 78%에 달했던 문맹률을 1959년에는 22%로 낮추는 기적적인 효과를 거뒀다. 학생 수는 크게 증가하여 중학생 10배·고등학생 3배·대학생은 12배로 늘었고, 해방 직후 19개교에 불과했던 대학의 수도 1960년에는 63개교로 늘며 무려 10만 명의 청년들이 대학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장례식은 서울 대한문과 남대문 주위를 가득 메운 인파로 넘쳤다. 정말 그가 좌파 세력들이 단죄하듯 말하는 독재자일 뿐이었다면 족히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국민이 왜 그를 추모하기 위해 상복을 입고 거리로 나왔었겠는가. 정말 그가 반인륜적인 독재자였다면 장례식 날 온 국민이 그의 사진을 짓밟고 불태우고 동상이라도 있으면 끌어내려 도끼로 내려찍지 않았겠는가. 그 시대를 함께했던 국민의 진심을 우리는 다시 헤아려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생전에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했던 대국민 메시지를 남기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이 나라 청년들의 가슴 속에 작지만 뜨거운 불씨가 되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의 자유를 회복할 것이 이때의 우리의 손에 달렸으니 분투하라! 싸워라! 우리가 피를 흘려야 자손만대의 자유 기초를 회복할 것이다. 싸워라! 나의 사랑하는 동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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