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 있는 건 내가 그걸 선택했기 때문이오. 난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으로 사는 건 싫어. 그런 걸 내게 요구하진 말아요. 난 다른 사람 삶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거든. 내 삶은 내가 책임져요. 가끔 외롭고 혼자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공평한 거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남자주인공 데니스가 여주인공 카렌의 청혼을 거절하며 하는 말이다.
덴마크 소설가 카렌 블릭센의 자전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1986년 제58회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7개 부문을 수상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문예영화 감독으로 알려진 시드니 폴락의 작품답게 스토리의 반전 등 극적인 흥미보다는 인물과 영상에 초점을 맞춰 유럽 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다. 남녀 주인공을 연기한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의 기가 막힌 연기, 아름다운 영상, 그리고 배경 음악이 삼합을 이루어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었다.
데니스와 카렌이 경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는 장면에서 펼쳐지는 아프리카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 그 속을 날아오르는 홍학의 무리, 카렌이 뒤로 팔을 뻗어 데니스와 손을 맞잡는 장면, 그리고 슬프고 아름다운 스토리가 펼쳐질 것을 암시하는 카렌의 독백과 함께 모차르트의 음악이 낮게 깔리는 영화의 시작 부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그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 미완성으로 남은 레퀴엠을 제외하고 완성된 곡으로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작품인 이 곡의 2악장 아다지오는 음악사상 가장 아름다운 선율의 하나로 꼽힌다.
클래식 음악의 경우 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가 연주한 버전, 심지어 같은 연주자의 각기 다른 연도별 연주의 버전이 있다.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또한 여러 버전의 연주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 명연주로 꼽는 게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세 가지 버전을 좋아한다. 테아 킹의 바셋 클라리넷과 제프리 테이트가 지휘하는 잉글리쉬 챔버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섬세하고 청아한 느낌의 연주, 레오폴드 블라흐의 클라리넷과 아르투르 로진스키가 지휘하는 비엔나 국립가극장관현악단의 연주, 제르바즈 드 페이에의 클라리넷과 피터 막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
같은 곡이 연주자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을 만들어내는 건 어째서일까. 아마도 그건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 넘어가는 속도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세한 속도의 차이가 극적으로 다른 느낌을 빚어낸다는 점에서 음악은 수학적이다.
수학·물리학 용어인 변위(變位)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변위란 시작점에서 끝점까지의 위치 변화를 가리킨다. 또한 시간에 따른 변위의 변화율을 속도라고 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속도에 따라 끝점의 위치가 달라진다는 가설 또한 성립된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하면, 예를 들어 우리나라 여당인 국민의힘이 여러 사안에 대응하는 속도가 빚어내는 결과들을 보면 속도의 차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를 실감하게 된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5월2일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KBS·MBC 등 공영방송이 “좌파 패널들에게 점령당했다”고 주장한 데 이어 1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공영방송 라디오 패널 구성 불공정성’에 관한 심의를 신청했다. 22일에는 포털 뉴스를 언론의 범위에 포함시켜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포털 내에서 뉴스가 편향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뜻에서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래 다수 언론매체들의 편향된 행동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제 와서 그걸 문제삼는 것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건지, 그동안은 왜 가만히 있었던 건지 의아하기 짝이 없다. 국정 운영에 민심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민심의 향방을 이끌어가는 게 언론의 기능임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건가.
국민의힘은 모든 사안에 대해 대응이 대체로 느리다. 그래서 더 꼰대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때그때 반응하지 않으며 뚝심과 배짱으로 묵묵히 버티는 건 대통령 하나로 족하다.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여당에선 빠른 속도로 대응하고 정책을 마련해 밀고나가 주어야 한다. 말할 때마다 눈 깜박거리고 발음이 좋지 않아 듣는 이의 주의를 흩트리는 당 대표, 야당의 약삭빠른 여론 선동에도 멀뚱멀뚱 먼 산 보듯 하는 의원들, 망가진 경제를 되살릴 대책 마련은 하고나 있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그 꿍꿍이속에 보는 국민은 박이 터질 지경이다.
오천만 개의 냄비, 그 절반 이상이 부글부글 끓고 있음을 국민의힘은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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