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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콜드브루] ‘30년 된 수능’ 확 바꿀 때 됐다
사고력 시험의 취지 좋았으나 갈수록 변질
새 체제와 함께 근본 대책인 '대학 개혁' 절실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05 06:32:00
 
▲ 홍찬식 언론인·칼럼니스트
수능시험이 다시 뜨거운 이슈다. 이번에는 그동안 반복됐던 ‘물수능’ ‘불수능’이나 출제 오류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수능’이라는 정치철학적 관점의 문제다.
 
사실 1993년 시작된 수능시험이 한국의 입시제도로서는 드물게 오래 살아남은 비결도 공정성 덕분이었다. 대입 정시모집이 여전히 여론의 지지를 얻는 것은 입시생들이 획득한 점수의 높고 낮은 순서대로 ‘공정하게’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불투명성이 높은 수시모집은 선진국 대학입시에서 보편화된 방식인데도 의심의 눈총을 받는다. 논술시험은 아리송한 주관식 채점에 대한 우려, 학생부 전형은 ‘엄빠 찬스’의 한계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지시한 ‘공정한 수능’에서 ‘공정’이 의미하는 것은 이와는 다른 뜻이다. 그는 수능시험의 킬러 문항이 비싼 사교육을 받느냐 마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했다. 정시모집의 장점이 ‘절차의 공정’이라면 여기서는 고액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대다수를 위한 ‘기회의 공정’을 말하고 있다.
 
수능이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으로서 학원만 배 불리고 있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하지만 30년 전 도입됐을 때만 해도 오히려 ‘사교육 킬러’로 박수를 받았던 게 수능이다.
 
수능은 미국의 SAT·영국의 GCSE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시험들은 지식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를 파악하는 일반적인 시험과는 성격이 다르다. 대학에 들어간 뒤 요구되는 통합교과적인 사고력과 분석력을 측정하는 게 목적이다. 한국에서는 수능시험 이전의 학력고사가 주입식 암기 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높던 터에 새로운 대안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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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능 과목의 명칭도 국어가 아닌 언어 영역, 수학이 아닌 수리 영역이었다. 대학 강의를 소화하려면 단순한 국어 실력을 넘어 이해력과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하고, 수리를 통해서는 논리적 사고를 기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지식 자체보다는 디지털 리터러시(문해력)가 더 중요해진 오늘날의 인공지능(AI)시대에 비추어 보면 방향성은 틀리지 않았다.
 
첫 수능시험이 치러지자 교육 현장은 술렁였다. 먼저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기존 사교육으로는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고득점을 위해서는 교양도서를 많이 읽어 독서능력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학교마다 독서 붐이 일었고 ‘반갑다 논리야’ 같은 관련 서적이 100만 권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교육 시장은 움츠러들었다.
 
교육제도의 실패는 내부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수능시험이 그랬다. 대학들은 시험 과목에 영어도 들어가야 한다고 나섰다. 또한 과학과 사회 과목들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학계의 로비가 치열했다. 수능시험에서 자기 전공이 빠지게 되면 그 과목이 교실에서 외면 받고 해당 학과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고 본 것이다. 수능은 그렇게 원래 취지는 퇴색하고 다시 암기력 시험으로 변질되어 갔다.
 
정치권은 한술 더 떴다. 수능의 일관성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외부 압력에 굴복하고 정무적 판단으로 근간을 흔들었다. 예컨대 2008년 한 해만 시행되고 사라진 수능 등급제는 성적표에 점수를 기재하지 않고 등급만 제시하는 방식이었는데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가 의기투합한 평등주의의 산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의 사교육은 아무리 이상적으로 설계된 시험이라도 발 빠르게 자신의 사업 영역으로 포획하는 괴력을 발휘해 왔다. 내신 논술이 그랬고 특기 적성마저 예외가 아니었다. 계속 ‘초지일관’을 했더라도 언젠가는 사교육에 의해 공략당했을 수능이 안팎의 입김 속에서 더 빠르게 추락해 갔다.
 
이번 논란은 현재의 수능 체제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 준다. 문제는 대안이다. 대학입시의 전형 자료로서 국가 차원의 테스트는 필요하다. 선진국치고 이런 성격의 시험을 실시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수능시험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롭게 만들든지 서둘러 결론을 내야 한다.
 
하지만 최종 해법은 수능 개혁이 아니라 대학 개혁이다. 수능은 입시 전형의 한 가지 도구에 불과하다. 수능이 제자리를 찾아도 입시 경쟁이 있는 한 다른 전형 방식에서 또 부작용이 불거질 것이다.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하는데 바로 한국 대학 수준의 빈곤이다.
 
최근 의대 진학 열풍을 보면 서울 명문대의 다른 전공을 놔두고 지방대 의대를 선택하는 걸 입시생들이 꺼려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지방대 기피 현상은 없다. 그들에겐 의대라는 전공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범위를 넓혀 한국 전체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최고 대학들이 존재한다고 치자. 입시 경쟁은 한결 누그러지고 사교육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희망을 입에 올리기에는 여건이 너무 참담하다. 대학들은 재정난으로 현상 유지조차 벅차다. 무엇보다 지방이 최고 수준의 대학을 보유하도록 만들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멀어 보여도 가장 가까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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