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지식인으로서 격동의 시기를 살면서 여러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축구 한일전 등에 등장해 널리 알려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정작 그의 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 에피소드는 짧은 몇 마디로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천재성을 상기시켜줄 뿐이다. 정인보는 ‘그에게는 역사적 사실의 핵심을 꿰뚫어 이해하는 영혼이 있다’고 평가했다.
1925년 발표된 ‘낭객의 신년 만필’은 신채호의 사상이 응축된 글로 손꼽힌다. 그 속에 포함된 ‘조선에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고,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主義)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는 구절이 돋보인다.
신채호는 ‘주의의 조선’에 대해 ‘존화(尊華)주의(중국을 떠받드는 사조)를 위해 조선이 존재하고, 삼강오륜을 위해 인민이 존재하며, 권선징악을 위해 역사와 소설이 존재하는 누백년 이래 노예 사상’이라고 덧붙였다. 외부에서 유입된 것들이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쓰이지 않고 그 자체로서 군림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사정은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있는 탓도 있다. 신채호가 ‘수천 년 동안 동양의 한 구석에서 외롭게 살아왔다’고 표현한 바 그대로다. 세계의 문물이 마지막으로 흘러드는 곳이 한반도였다. 불교가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순서로 유입된 것처럼 말이다.
지리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는 일단 밖에서 들어온 것을 최대한 지키는 게 이익이다. 다시 새로운 것을 만나기가 쉽지 않아서다. 시간은 넉넉하니 ‘주의’의 내용을 갈고 다듬을 수 있고 원칙은 더 숭상된다. 잘못된 주의나, 시효가 끝난 주의라도 힘과 권위는 더 커지는 ‘종착지의 역설’이다.
중국 학계에서 한국의 성리학이 연구 대상인 것은 중국에선 사라진 성리학이 한국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채호는 ‘그 정신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았다’고 했다. ‘주의’에 대해서도 ‘주의의 간판을 붙이며 자유 개조 혁명의 명사만 외우는 형식적 인물들이 많다’고 했다. ‘주의’를 위해 ‘조선’이 존재하는 가장 가까운 사례는 박제된 북한의 공산 체제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신채호가 탄식해 마지않던 ‘주의의 조선’이 반복되고 있다. 김정은의 핵 앞에서 노예가 될 판인데도 ‘평화’를 떠받들고, 다 같이 못 살게 되는 데도 ‘노동자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그 중심에 더불어민주당이 있고 그들 뒤편에는 ‘주의’라는 것이 버티고 있다. 이들 앞에서 과학도, 사실도 무색해지는 것은 ‘주의’가 모든 것에 앞서는 절대적 가치라는 방증이다.
이들의 ‘주의’는 흔히 좌파 이념으로 불리지만 외국 좌파들이 자유 인권 평등 같은 진보적 가치를 내걸고 있는 것과는 또 다르다. 한국 좌파는 유럽의 극우 정당들에서 볼 수 있는 폐쇄적 민족주의와 함께, 사회주의 중에서도 오래전에 용도 폐기된 노선을 추종한다. 좌우 양극단이 동거하는 이것 역시 한반도가 ‘외부 문물의 종착지’인 특성에서 비롯된 것일까.
신채호가 ‘주의의 조선’을 거론한 것은 그 속에서 조선 망국의 원인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물질적 성취를 이룬 현대 한국도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와 서울양평고속도로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각기 달리는 두 개의 평행선이 좁혀질 여지는 없다. SNS에는 ‘주의’를 결사 수호하기 위한 세력들의 선동과 괴담이 난무한다. 이들의 주특기인 불법과 과격 시위도 세계 정상급이다. 이런 사태가 길어지면 어떤 나라도 버텨낼 재간이 없다.
신채호와 동시대를 살았던 중국의 사상가로 량치차오가 있다. 당시 최고의 조선 전문가였던 그의 글 ‘조선 멸망의 원인’도 현 시점에서 눈길을 끈다. 량치차오가 조선의 망국 원인으로 지적한 것이 ‘관리’와 ‘붕당’이었다.
‘관리는 조선에서 가장 이익이 남는 영업이었다. 명예를 잃고 법을 어기더라도 그것만 얻으면 걱정할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관리가 되고자 하는 자의 숫자는 늘 관리의 정원을 초과했다. 이런 까닭에 조선은 붕당을 가장 많이 만들었고 음모 꾸미기를 좋아했다.’
그때는 국회의원이 없었을 테니까 ‘관리’라는 단어를 국회의원이나 선출직 공직자로, ‘붕당’을 정당으로 바꿔 보면 지금도 한국 사회에 무리 없이 적용되는 서술이다. 사실 민주당의 ‘주의’라는 것도 ‘가장 이익이 남는’ 권력 장악을 위해서다. 주의를 내세워 표를 모으고, 이미 확보한 권력을 지키려고 더 지독한 주의를 끌어들인다. 오늘날 민주당의 ‘주의의 조선’은 권력 중독자들의 금단 현상이다.
신채호는 망국 앞에서 ‘조선의 도덕과 주의를 위해 곡(哭)하려 한다’고 외쳤다. 만약 그가 다시 살아나 현대 한국 정치를 본다면 “아직도 이러고 있으면 어쩌느냐”며 절망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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