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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연령차별에 대해선 왜 침묵하는가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8-09 06:31:20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모두가 같은 배를 타면 당장은 마음이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한때의 평온일 뿐…. 반면 혼자서 걷기 시작하면 처음엔 불안하기 마련이다. 상식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려 하면 주변에서 곱지 않게 보고,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으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사람에 따라 그 생각이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가 갈리겠지만 인생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결정하는 절반은 자신의 주관이다. 남은 절반은 객관인데, 그 객관은 사실 ‘주위 사람들의 생각’인 경우가 많다. 관점을 그런 것에 둘 필요는 없다….”
 
일본 인문학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도야마 시게히코(外山滋比古)라는 영문학자가 있다. 그의 책 ‘사고(思考)의 정리법’은 270만부 이상 팔리며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됐고 출간 이후 현재까지 동경대 학생들의 애독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위의 글은 90대에 출간한 그의 책 ‘자네는 늙어 봤나, 나는 젊어 봤네’에 실린 것이다.
 
바로 그런 ‘자신의 관점’으로 노년의 삶을 사는 여자를 그린 영화가 있다. 리테쉬 바트라 감독이 연출하고 로버트 레드포드와 제인 폰다가 주연한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 2017)’이란 작품이다. 제인 폰다가 연기한 영화의 주인공 에디는 미국의 한 시골 동네에 홀로 사는 70대 이상 된 여자다. 그녀가 어느 날 이웃에 사는 같은 또래의 남자 루이스의 집 문을 두드리며 스토리가 펼쳐진다.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요. 괜찮다면 언제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잘래요? …저는 좀 외롭거든요. 당신도 그럴 것 같아요. 섹스를 하려는 건 아녜요. 밤에 옆에 누가 좀 있었으면 해요.”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고 루이스는 종이봉투에 잠옷을 담아 에디의 집 뒷문으로 드나든다. 남들의 시선을 꺼려서다. 에디는 그런 루이스를 앞문으로 오게 하고 이윽고 두 사람 사이 외로움이 비켜난 자리에 친밀감과 함께 서서히 우정과 사랑의 감정이 자리 잡게 된다. 동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망측한 관계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지만 에디는 개의치 않는다….
 
▲ ‘밤에 우리 영혼은(Our Souls at Night, 2017)’의 로버트 레드포드(오른쪽)와 제인 폰다. 두 사람은 80대 나이에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나이든 남녀의 로맨스를 사람들은 흔히 ‘망측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상상하고 망측해 하는 건지 몰라도 아무튼 대다수의 경우 그렇다. 나이든 사람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살다 보니 어느 날 60세가 넘어 버려 ‘고령층’으로 분류되고 편견의 대상이 된다는 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 편견이 혹시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이어도 막아 줄 사람도, 함께 맞서 줄 사람도 없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60대 이상의 사람들이 겪어 내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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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없이 혼자 살아서 그런지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다. 타고나기를 체력이 좋은 편인 데다 그날이 그날 같은 하루하루를 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어르신’ 취급에 깜짝 놀라는 경우도 가끔 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차선위반인가 속도위반으로 출두통지를 받고 경찰서로 전화를 했을 때다. 담당자가 “본인이십니까?” 하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놀랐다는 듯 “직접 운전을 하세요?”라고 몇 번 묻고 되물었다. “너보다 잘해”라고 말하려다가 일이 꼬일 것 같아 그냥 계속해서 “네”라고 대답했었다.
 
2009년에 제정된 ‘연령차별금지법’엔 연령 때문에 부당한 일을 당할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연령차별을 당했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너도나도 그저 나이를 먹었으니 참아야 한다 생각하고 넘기는 것이다.
 
억대 연봉에 삼고초려해서 모셔 가는 존재였던 사람이 시간제 알바 자리에 감격하게 되는 것, 필요한 돈쯤은 언제라도 벌 자신이 있었던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 그래서 괜히 걸음걸이가 얌전해지는 것… 이런 것들이 나이듦이 가져오는 현실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7월30일 한 청년좌담회에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로 표결해야 하나”라는 말을 해서 요즘 한창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러자 대한노인회장이 김 위원장의 면전에서 그녀의 사진을 후려치는 이벤트를 벌여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네이버 지식iN엔 “60세 이상 고령층 인구수가 얼마인가요? 그분들이 빨리 하늘나라로 가셔야 나라가 바뀔 텐데여”라는 글이 올라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수는 1300만 명, 얼마 안 있어 전체의 삼분의 일 수준에 육박할 것이다. 그 많은 인구를 생산가능인구로 편입시킬 정책, 나이를 먹었으면 없는 듯 기죽어 있는 게 당연한 거라는 편견을 바꿀 정책을 ‘노인의 힘’이라 불리는 여당에서 왜 내놓지 않는 걸까. 그리고 그 1300만의 고령층은 왜 부당한 모욕과 편견·차별에 대해 침묵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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