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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콜드브루] ‘홍범도 신화’의 정확한 사실 파악이 먼저
자유시 참변 책임 등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
흉상 문제는 文정부의 ‘역사 정치’가 출발점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13 06:31:30
 
▲ 홍찬식 언론인·칼럼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등 5명의 흉상을 이전하는 문제가 ‘이전 확정’으로 결론이 내려졌으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이 결정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시중에 만만치 않은 걸 보면 한번 실행된 걸 되돌리는 것은 그게 맞든 틀리든 어려운 일이다.
 
이번 논란에 시시비비를 가리려면 홍범도 흉상 문제에 그치지 말고 그 전후 사정을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국군의 날’ 날짜 변경(2017년 8월), 김원봉 국가유공자 포상 추진(2018년 11월), 홍범도 유해 송환 (2021년 8월) 등 국군의 정체성을 바꾸는 일들을 치밀하게 진행했다. 2018년 3월 육사에 설치된 홍범도 흉상은 그 여러 과정의 일부였다.
 
좌파 세력의 숙원 사업이었다. 예컨대 국군의 날(10월1일)이 6·25전쟁 때 우리 군이 북한군에 반격을 가하며 38선을 돌파한 날로 정해진 것은 이들의 정서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육사 생도들이 배우는 필수과목에서 ‘6·25전쟁사’를 빼고 ‘백선엽 지우기’에 매달린 것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았다. ‘역사 교체’이자 ‘역사 정치’였다.
 
이 가운데 ‘국군의 날 변경’ ‘김원봉 포상’ 등은 거센 반대에 직면해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홍범도 흉상’은 또 다르다.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홍범도 신화’가 우리 사회에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논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홍범도 신화’를 다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나라를 빼앗긴 엄혹한 시기의 독립운동은 지금도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지만 특히 무장투쟁과 관련된 독립운동사는 실체가 부정확하고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혼란의 시기였던 탓, 기세 싸움 속에서 전과가 축소 또는 과장되는 탓일 것이다. 홍범도 장군이 활약했던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관점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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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화 ‘봉오동 전투’의 마지막 장면은 독립신문의 기사를 보여주면서 ‘일본군은 사자(死者) 157명, 중상자 200여명, 경상자 100여 명의 피해를 입은 반면, 독립군은 사자 4명, 중상자 2명의 피해를 입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일본군 측 보고서인 ‘봉오동 부근 전투상보’에는 일본군의 전사자는 1명, 부상자는 2명으로 나와 있다. 차이가 너무 크다.
 
봉오동 전투보다 더 큰 규모였던 청산리 전투의 전과에 대해서는 우리 측 정식 보고서가 일본 전사자 1257명, 부상자가 200여 명, 독립군 손실은 사망 1명, 부상 5명, 포로 2명이라고 밝혔다. 다른 자료에는 일본군 전사자가 3300명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반면에 일본 측 자료들은 일본군 전사자가 많아야 74명에 그치고 있다. 일본 자료의 축소 가능성이 높지만 우리 측 보고서 역시 그대로 믿기 어렵다.
 
독립운동 전과의 신뢰성을 문제 삼은 기록은 당대에 우리 쪽에도 있었다. 같은 시기 소련 연해주에서 활동했던 김경천 장군이 남긴 일기인 ‘경천아일록’이 대표적이다. 그는 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측 병력이 400명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능히 400으로 적의 연대와 접전하여 400의 3배 이상을 전멸시킨 것이라…’라며 의문을 나타내고, ‘우리 민족의 허명(虛名)에 만족하는 성질을 바로 잡는 것이 독립보다도 제일 중대한 문제’라고 적었다.
 
하지만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홍범도 장군의 공적은 흔들리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항일 투쟁에서 독립군이 거둔 가장 혁혁한 승리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직후인 1921년 6월 발생한 자유시 참변에서 그의 역할과 책임이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최대 비극’으로 불리는 바로 그 사건이다. 독립군들이 연해주의 자유시라는 곳에서 서로 싸워 스스로 와해되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 홍범도 장군이 여기에 얼마나 책임이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다.
 
이때 그는 포로로 잡힌 독립군에 대한 처벌을 내리는 재판위원 3명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재판에 회부된 사람은 428명이었고 그 중 72명이 중대 범죄자로 분류돼 자유시에서 이르쿠츠크로 옮겨졌다. 열차 이동 중에 7명이 차량 바닥을 뜯어내고 탈출하다가 2명이 숨지는 참혹한 일도 있었다. 이후 홍범도는 독립군 내부로부터 ‘배신자’라는 원성을 들으며 이들에게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듬해인 1922년 모스크바에 초청받아 레닌으로부터 200루블 어치의 금과 무기를 상으로 받았다는 점, 또한 소련 공산당원이 되고 정치학교를 졸업했다는 점도 분명하다.
 
1937년 연해주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 때 소련이 사전 조치로 한인 지도급 인사 2500명을 학살했는데 그가 포함되지 않은 이유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의 명성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사실들이다.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문재인정부의 ‘역사 정치’였다. 그 종착점은 앞으로 독립운동사와 관련된 유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잣대를 적용해야 할지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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