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70년대 중반 대학에 입학했다. 캠퍼스 교문에서 학생회관으로 가는 길목에 별로 크지 않은 공원이 있었는데 그곳을 지날 때마다 학생들이 꽹과리·장구·북 등을 치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그 부근이 농악 동아리의 연습 장소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도시에서 성장한 탓인지 요란한 농악 소리가 처음에는 듣기 거북했지만 점점 그 신명에 익숙해져 갔다.
1970년대 대학 문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민속 문화’였다. 하찮고 낡은 것이라고 버려두었던 ‘우리 것’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농악 말고도 판소리·탈춤·국악도 있었는데, 탈춤이 단연 인기였다.
대학 밖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민속 문화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사업이 활발했다.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제1차 문예중흥 5개년 계획이 박정희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시행됐는데 전체 예산의 70.2%가 민속 문화 쪽에 투입됐다.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라는 행사가 스포츠 분야의 전국체전처럼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됐다.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민속놀이와 민속예술을 발굴해 선보였다. 누가 최고상을 받느냐를 놓고 대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요즘 지자체마다 빠지지 않는 지역축제가 민속예술제의 형태로 처음 시작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박정희 정권과 민주화 운동권은 서로 다른 가치와 지향점을 갖고 양 극단에서 대립했다고 누구나 알고 있다. 예외가 한 가지 있다. 둘 다 민속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공통점이 있다. 물리적으로 둘 사이의 실행력 격차는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후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운동권이 이 경쟁에서 밀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같이 민속 문화를 내세우면서도 서로 다른 꿈을 꾸는 ‘동상이몽’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여러 곳에서 행한 연설문에는 민속 문화와 관련된 언급이 꽤 많이 나온다. 눈에 띄는 것이 문화를 ‘제2경제’라고 정의하는 대목이다. 그는 ‘제1경제’를 물질적인 경제라고 보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2경제로 문화를 내세웠다.
1968년 한 행사(제2경제 운동 국민궐기 대회)에서 그는 “제2경제 운동은 모든 국민이 민족적 주체의식을 확고히 하자는 운동이요, 미래에 대한 밝은 비전을 갖고 새로운 정신 자세로 경제 건설에 박차를 가하자는 운동”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속 문화를 계승하고 부각하려는 이유가 경제적 관점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우리 스스로 문화 민족이었다는 자긍심을 가져야 과거의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 경제 발전을 이뤄낼 수 있다는 철학이 깔려 있었다.
반면에 1970년대 대학가의 민속 문화 열풍은 체제에 대한 저항 수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탈춤의 경우 과거 지배계층 비판과 민중 의식을 담은 연희이므로 대학생들이 탈춤을 통해 민족 주체의식을 높이면서 민중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이념이었다.
이른바 ‘탈춤 운동’은 전통 탈춤에서 시작해 마당극·마당굿 등으로 형식을 바꾸고 현대의 문제를 다룬 창작물까지 공연하면서 1980·90년대 민주화운동과 이어지게 된다. 요즘 좌파들의 집회가 ‘문화제’를 앞세우는 것에서도 그때의 유산이 남아 있다. 둘 다 동일하게 ‘민족 주체의식’을 말했지만 한쪽은 ‘경제’, 다른 한쪽은 ‘민중’을 위한 것으로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길의 성패는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다. 한국은 1970년대의 가난에서 벗어나 세계 10위권의 경제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의 한국인 대다수는 그때 뿌려진 문화적 자존감 위에 서 있다. 민속과 전통 문화에 눈을 돌려 그 힘으로 경제적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시도는 뜻을 이뤘다.
문제는 운동권의 성적표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에 대해 주사파 이론가였다가 전향한 민경우는 ‘소박한 농촌공동체’라고 정의했다. 1990년대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자 운동권은 큰 충격에 빠졌다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아직 건재한 중국과 베트남의 사례에서 ‘대안과 희망’을 찾았다고 한다. 중국 모택동의 ‘사람 중심’ 사상이나, 북한의 주체사상이 이런 공동체를 모델로 삼은 점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 공동체라는 것이 썩 여유롭지는 못해도 골고루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말한다면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설명이다. 젊은 날의 민속 문화에 대한 이념적 열기가 이들에게 그 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이런 전근대적인 단계를 훨씬 지나쳐 와버렸고 이제 와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사회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걸 다들 알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민속 문화는 아쉽게도 그때를 정점으로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갔다. 관객들로 북적이는 공연장에서 민속과 전통문화와 관련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일 수도 있고 그럴수록 획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이와는 별개로 운동권의 ‘몽상’은 그 형태를 바꿔가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여러 비극이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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