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자유계약 선수(FA)로 최근 7억 달러(약 9200억 원)짜리 초대형 계약을 체결한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에게는 ‘이도류(二刀流)’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이도류는 일본 검술에서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칼 또는 검을 들고 행하는 검술을 말한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도류’라고 하면 두 가지 포지션을 뛰어나게 소화하는 선수를 말한다. 오타니는 프로 야구선수로서 투수와 타자를 훌륭하게 겸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수와 타자 가운데 한 쪽에만 매진해도 성공하기 힘든 MLB에서 그는 두 역할 모두 최정상급 활약을 펼치며 야구사를 새로 쓰고 있는 개척자다.
사회인 야구선수로 뛴 아버지와 배드민턴 선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오타니는 어릴 적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아버지는 운동을 잘하도록 별별 수단을 동원하는 강압적인 스타일이 아니었다. 경기 때마다 늘 전력을 다하라며 야구에 대한 태도를 일러준 게 밥상머리 교육의 전부였다.
아버지의 가르침과 함께 오타니가 다닌 고등학교 사사키 히로시 감독도 그의 인성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사사키 감독은 그에게 고교 시절 내내 숙소 화장실 청소를 맡겼지만 그는 불평 한마디 없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겸손하게 처신하는 것을 배운 것은 이때였다. “세상 꼭대기에 설 선수들은 하찮고 궂은 일도 해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두 차례 올림픽(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수영에서 금메달을 무려 14개나 획득한 ‘수영 황제’ 마이크 펠프스(미국)가 전성기 시절 하루 1만 칼로리를 섭취했듯 오타니도 하루 11공기씩 밥을 먹으면서 몸집을 키웠다. 비쩍 마른 몸의 4번 타자에 145㎞의 강속구를 던졌지만 벌크업된 이후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키는 193㎝까지 자랐고 몸무게도 20㎏이나 늘어 거구가 되면서 구속은 세계 최정상 수준인 160㎞를 웃돌았다. 고교생 중에 그의 볼을 건드릴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
웬만한 프로선수도 던지기 힘든 160km의 구속을 자랑하는 오타니는 일본뿐 아니라 메이저 리그 구단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 2013년 니폰햄에 입단한 그는 2015년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 자책점)을 차지하며 퍼시픽리그 최우수 투수가 된 뒤 2016년엔 최고구속 신기록 165km를 찍기도 했다. 니폰햄을 10년 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것도 이때였다. ‘야구 천재’로서 이룰 것은 거의 다 이룬 셈이다.
일본에서 9년을 채우고 FA를 통해 미국으로 가면 더 큰 돈을 챙길 수 있었지만 하루빨리 최고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열망과 명예를 위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입찰제)을 통해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었다. 에인절스가 그를 영입하는 과정은 전쟁 수준이었다.
오타니와 자주 비교되는 ‘MLB의 전설’ 베이브 루스(1948년 사망)는 두 시즌만 투타를 겸했고 그나마도 꺼려 했다. 반면 타석에서 일을 낼 수 있다면 군말없이 달려 나가는 오타니다. 우투 좌타인 오타니는 MLB 첫해 타자로서 22홈런·61타점, 투수로 평균 자책점 3.31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AL) 신인왕에 올라 기대에 화답했다. 2023시즌 오픈에 앞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에서 오타니는 투타에서 맹위를 떨쳐 일본의 우승을 이끈 뒤 대회 MVP에 선정돼 진가를 떨쳤다.
신인왕·리그 MVP를 수상했지만 그를 진정 특별하게 만든 것은 단일 시즌에 투수로 10승, 타자로 40홈런을 기록한 일이다. 오타니의 기록은 154년 MLB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오타니는 타자로 타율 0.304·44홈런·95타점·20도루, 투수로는 10승5패 평균자책점 3.14· 탈삼진167개를 기록한 뒤 2024 시즌을 앞두고 6년간 활약한 LA 에인절스를 떠나 지역 라이벌 LA 다저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서 7억 달러라는 초대형 대박을 터뜨렸다. 5만원 권 100장의 두께는 약 1.1㎝인데 9200억 원을 5만 원권으로 쌓으면 높이가 국내 최고층 빌딩 잠실 롯데타워(555m)의 3배를 넘는다. 오타니는 ‘축구의 신’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FC 바르셀로나와 맺었던 6억7400만 달러를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몸값을 기록한 것이다.
오타니는 몸값만 높은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인성과 배려심도 갖췄다. 다저스의 성공을 위해 7억 달러를 계약 기간 내엔 받지 않고 이후에 받겠다고 구단 측에 먼저 제안했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팀 전체를 생각해서 이 같은 배려를 결정한 오타니의 됨됨이는 ‘슈퍼 스타급’이었다. 모두가 놀랄 일이었다. 나이 서른 살도 되지 않은 청년의 생각치고는 기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9월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가 다시 투타 겸업을 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린 시절부터 MLB 무대를 꿈꾸며 존경해 온 스즈키 이치로·마쓰이 히데키 등을 한참 넘어섰다는 점이다. 오타니의 ‘위대한 시즌’은 이제 시작이다.
박병헌 디지털 뉴스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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