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언론사 기자가 KBS에 관한 현안을 묻고자 전화를 해 왔다. 이야기 도중 기자가 방송통신위원회도 담당한다고 하기에 반대로 방송통신위원회 근황을 물어보았다.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당이 국회 의석 190개를 가지고 방송법 개정 같은 엄포들을 쏟아 내고 있어 민감한 현안들은 의제조차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이었다.
하긴 정치적 쟁점이 될 정책을 결정하려 하면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을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말 그대로 ‘식물 규제기구’가 된 듯한 느낌이다. 방송규제의 정치적 독립성을 명분으로 만든 방송통신위원회가 거꾸로 정치에 발목이 잡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치에 종속된 규제기구’가 되어 버렸다. 언론통제 기관이라고 비판받았던 옛 문화체육관광부나 공보처 같은 독임제(의사결정·집행을 개인이 담당하는 제도) 기구보다 역설적으로 더 심한 정치기구가 된 셈이다.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당시 방송규제 기구를 독임제와 위원회 중에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방송규제의 정치적 독립성과 정책의 공정성을 위해 여야 추천으로 구성하는 방송위원회가 설립된 것이다. 이후 2008년 정보통신부와 통합되어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가 되었다.
물론 위원회 형태의 규제 기구라고 문제점이 전혀 없을 순 없다. 책임성 결여·정책 결정의 지연과 비효율성 같은 문제는 위원회 형태의 규제기구에 대한 많은 연구 결과들이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정치적 안배 방식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경우 정치적 역학 구도에 따른 비의제화·나눠 먹기 정책 같은 문제점들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럼에도 결국 합의제 위원회 기구로 결정된 배경에는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의 사례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여야가 각각 2명의 위원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위원장을 임명하는 현행 방송통신위원회 구성 방식은 FCC 모델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각각의 위원들이 독립적으로 개별 정책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논의와 합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해 나가는 모습이 매우 이상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FCC가 항상 합리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3:2 위원 구성 방식은 대통령이 지명하는 위원장이 사실상 정책 결정의 키를 쥐고 있어 독임제와 큰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많다. 또 아무리 합의의 정치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고 해도 정책 결정의 비효율성은 가장 크게 비판받는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실제로 1987년에 17개월 동안 후임 FCC 위원 2명이 임명되지 않아 이례적으로 효율적이고 신속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졌다는 역설적 사례도 있다.
미국의 FCC 뿐 아니라 영국의 Ofcom·프랑스의 CSA처럼 많은 나라들이 위원회 형태의 방송·통신규제 기구를 가지고 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위원회 제도로 인한 내면적 문제나 갈등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들은 이러한 위원회 제도의 약점을 성숙된 정치 문화로 보완해 가고 있다. 물론 최근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극단적 정치 갈등은 우려되는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합의제 규제 기구를 벤치마킹해 만든 우리 방송통신위원회에게는 그런 정치 문화가 없다는 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도입 취지와 정반대로 정치적 갈등의 장이 되어 정치에 발목 잡힌 무기력한 기구로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형식적이라고 하지만 위원 추천에서 고려되었던 전문성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여야 모두 오직 정치적 전투력만이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
미국의 FCC를 모델로 만든 우리 방송통신위원회를 보면 귤이 기후나 환경이 다른 곳에서는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정치 문화가 척박한 상태에서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합리성은 고사하고 민주적 정치 과정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는 이런 우려를 더하게 만들고 있다.
학계에서도 정치적 갈등 때문에 정책 기능이 실종된 방송·통신규제 기구를 독임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글로벌 OTT(인터넷으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공세·가짜뉴스 창궐·사업자 간 갈등 같은 정책 현안들이 정쟁에 밀려 뒷전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 새로운 정책이 나오기는커녕 기존에 해 오던 정책 기능이라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치가 접수한 무기력한 방송규제 기구의 암울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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