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생 용띠 동기들은 대부분 필드를 떠났지만 신지애는 여전히 치열한 샷을 날리고 있다. 88년생 선수들은 ‘육아 휴직’ 중인 박인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막 뒤로 사라졌다. 36세는 운동선수로선 적지 않은 나이다.
신지애는 프로 생활 20년 기간 중 올 시즌이 가장 바쁘다. 단순히 투어에 오래 남아 있는 게 아니라 2022년에도 2승을 거두고 지난해 여자골프의 최고 대회인 제78회 US여자오픈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신 선수는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파리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 본인의 주무대인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뿐 아니라 미국과 한국 등 각종 대회에 얼굴을 내밀었다. 올림픽 출전에 꼭 필요한 랭킹 포인트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여자골프 세계 랭킹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 유럽여자프로골프(LET)투어·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호주여자프로골프(ALPG) 투어 등 세계 5대 투어 대회와 미 LPGA 2부 투어에서의 최근 2년간 성적을 기준으로 매겨진다.
KLPGA 투어 21승·LPGA 투어 11승(메이저 대회 2승)·일본 JLPGA 투어 28승 등 전 세계 투어에서 통산 65승을 기록 중인 신지애는 미국 무대에서 주로 뛰던 2010년, 한국 선수 최초로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골프는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올림픽에 나갈 일이 없었다.
키가 155cm에 불과해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신지애는 랭킹 포인트가 많이 주어지는 LPGA투어에서 뛰다가 2014년 JLPGA로 무대를 옮겼다. 단순히 지친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였다.
지난해 세계 68위로 시즌을 시작한 신지애는 최고의 메이저 대회인 지난해 US여자오픈 공동 준우승·AIG 여자오픈 3위 등으로 랭킹이 오르면서 올림픽 티켓에 도전장을 냈다.
2월 호주의 빅오픈으로 올 시즌을 시작한 신지애는 3월 미국에서 개최된 LPGA투어 퍼힐스 세리박 챔피언십에도 초청 선수로 나섰다. 4월에는 3년 8개월 만에 국내에서 열린 KLPGA 투어 두산건설 위브 챔피언십에도 출전했고, 심지어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날아갔다. 모두 랭킹 포인트를 쌓기 위한 혼신의 노력이었다. 올림픽 티켓이라는 목표가 있기에 힘든 줄도 몰랐다.
신지애가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파리올림픽 출전을 보장받기는 쉽지 않다. 신지애가 파리올림픽 무대를 밟기 위해선 개막을 불과 한 달여 앞둔 24일까지 세계 랭킹을 15위 안으로 끌어올려야만 한다. 랭킹 포인트가 많이 걸린 US여자오픈에서 공동 39위에 그친 게 뼈아프다.
이제는 랭킹을 15위까지 끌어올릴 시간이 거의 없다. 더구나 신지애는 LPGA 정규멤버가 아니다. 올림픽 출전 선수 명단이 확정될 때까지 남아 있는 대회는 13일에 열리는 메이어 LPGA 클래식과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2개뿐이다.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는 LPGA 멤버들만 출전할 수 있지만 신지애는 세계랭킹 22위로 초청을 받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않는 한 파리행 티켓을 따는 건 불가능하다.
전 세계 60명만이 출전하는 올림픽 여자 골프에는 국가당 2명이 출전할 수 있는데 세계 15위 이내 선수는 국가당 최대 4명까지 나갈 수 있다. 리우올림픽과 도쿄올림픽에는 태극낭자 4명이 출전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11일 현재 고진영이 6위·김효주가 12위·양희영이 23위다.
7월에 열리는 파리올림픽은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세 번째 열리는 올림픽이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112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골프 경기에서 한국은 박인비가 여자부 금메달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출발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1년 늦게 열린 2020도쿄올림픽에서는 노메달에 그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채를 처음 잡은 신지애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03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졸지에 세상을 떠나는 큰 슬픔을 겪었다. 그는 늘 어머니를 추억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전의 어머니가 하던 말을 평생의 가르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신지애는 어머니가 남긴 친필 육아일기를 보면서 힘들 때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고 한다.
비록 올림픽 출전이 무산되더라도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과정에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게 신지애가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선수생활을 영위하는 이유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맏딸 신지애를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다. 신지애에게 다다음 올림픽을 위해 4년을 더 기다리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걸까.
박병헌 디지털뉴스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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