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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칼럼] 중도층 지지를 얻어 내는 비결
김대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19 06:31:20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선거 표심을 분광기(分光器)로 분석하면 크게 세가지 빛깔로 나뉠 것이다. 이념·이익·매력이다. 이념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이익은 자리·예산 등 물질적 이익과 손해를 따지고, 매력은 호오(好惡) 감정으로 좋고 싫음을 따진다. 가치·비전·정책은 대체로 이념과 이익의 중첩·융합이다.
 
4.10 총선 평가의 결론은 크게 보수 정체성 강화론(보수 가치 회복론)과 중도 정체성 강화론(보수 가치 변화론)으로 나뉜다. 이는 기존의 보수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서로 상충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상호 보완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즉 보수를 북한과 좌파가 일방적으로 붙인 딱지인 친일·반공·냉전·수구·기득권과 성장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 등으로 이해하면 보수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진보·좌파적 가치를 전향적으로 수용한 19세기 영미 보수를 사표(師表)로 삼고, 김구, 김대중, 5·18을 숭모하고 건국·산업화의 그늘을 크게 보면서 이를 따뜻한 보수나 개혁 보수로 포장해야 한다.
 
그런데 보수 스스로가 규정하는 정체성으로 보면 보수 강화론과 중도 강화론은 충돌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결합·상생이 가능하다. 진보와 보수·좌파와 우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국가와 시장의 역할·노동권과 재산권(자본)에 대한 태도·공동체와 개인의 책임·이상(급진)과 현실(점진)에 대한 태도 등은 세계 보편적이고, 대북 정책과 대한민국 역사의 빛과 그늘에 대한 강조점 차이는 한국 특수적인 것인데, 지금 시대는 보수우파의 가치가 결코 낡지도 않았으며 과잉도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대 정당이 휘두르는 무기의 이념적 차이를 중도층이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이쪽 말을 들으면 이쪽이, 저쪽 말을 들으면 저쪽이 옳은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양대 정당은 친일·독재 시비나 반미·친북(빨갱이) 시비를 통해 이념적 차이를 설명하려고 해 왔다. 물론 실제 목적은 이념적 차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게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공포·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양대 정당이 흔들어대는 이익은 주로 지연·학연에 따른 자리(채용·승진·보직 등)·예산·사업 기회 등이다. 그런데 부산·대구·광주·새만금 신공항 건설 공약에서 보듯이 이런 것들은 대체로 포퓰리즘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워 중도층에게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면 도대체 중도층은 무엇에 크게 반응하는가? 한마디로 감정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거부 감정의 핵심이 공포·혐오·모욕감이라면, 끌리는 감정의 핵심은 매력·호감이다. 매력은 정말로 많은 요소의 결합·융합이다. 희생과 헌신의 ‘고난 서사’·일관성·진정성·소신과 지조·패기와 박력·새로움과 젊음·좋은 인상·품격 등. 그래서 정치권에선 새정치·새인물·탈이념·탈정치를 끊임없이 부르짖어 왔다. 기성 정치에 물들지 않은 전문직업인이나 0선(選)정치인 등이 새인물 임을 표방해 왔다. 정주영·문국현·안철수·윤석열·이준석·한동훈 등이 때묻지 않은 새인물의 계보를 이어 왔다.
또 하나 한국 선거판에서 즐겨 소환된 것이 품격과 막말이다. 막말은 이념·이익보다 대중이 이해하기도 쉽고 분노·혐오도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때묻지 않은 새인물 한동훈이 간판인 국힘당에게 중도층은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반면에 역대급 막말에 막행동까지 자행한 민주당 후보들에게도 너무 관대했다. 이것은 뭔가 정부·여당에 아주 강력한 비매력·비호감 요소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고난 서사’가 아닐까 한다.
 
인간은 빵(이익)과 더불어 자신이 정의의 편이라는 자의식(이념)을 먹고산다. 과거와 현재(모순·부조리)를 연결시켜 자신이 정의의 편에 선 존재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서사(敍事)=스토리’가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은 동학혁명(반외세·반봉건) 서사·도덕 서사(항일·양심 대 친일·기회주의)·민주화투쟁 서사·노동·민중투쟁 서사·한반도평화 서사·촛불시민혁명 서사 등을 배경으로 자신들은 비기득권·호남·약자·소외자·노동·민중·평화 편이고, 국힘당은 기득권·강남·강자·자본 편이라는 구도를 만들었다. 
 
반면에 국힘당은 1876년 개항 이후 150년간 온갖 고난을 이겨 내고 한반도 근대화·산업화·민주화를 주도한 위대한 정치 세력이자 이승만·박정희가 보여 주었듯이 필요하면 급진적·혁명적 개혁도 불사하는 친(親)서구문명,친발전·친기업·친성장·친실용·친청년·친성밖서민(진짜 서민) 세력이라는 정체성을 전혀 인식하지도 선전하지도 못했다. 한동훈의 정교하고 깔끔한 메시지에는 정작 중요한 보수의 서사·정체성도, 시대의 아우성을 받아안은 담대한 변화·개혁 비전도 없었다. 오히려 중도 표심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다 보니 종종 큰 정치적 자충수를 두었다.
 
한국에서 중도는 흔히 반윤석열·반이재명 혹은 비국힘당·비민주당 정치 성향으로 뭉뚱그려진다. 하지만 이들을 견인하는 방법이 곧 국힘당 후보의 반윤석열 발언이 아니다. 반윤석열·반이재명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 내지 그림자라면 원인 내지 실체는 이념(불의)·이익(불이익)·매력(비호감)의 결합·융합이다. 
 
그런데 그림자에 주목하여 반윤석열(대통령 사과 혹은 탈당 요구 등)을 외치니 본인은 신의 없는 사람 혹은 ‘내부 총질러’가 되고, 국힘당은 소신파가 얼마든지 할 말을 하는 민주 정당이 아니라 거대한 위협 앞에서 단결하여 싸울 줄 모르는 각자도생 콩가루 집안처럼 비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수를 경악하게, 중도를 회의(懷疑)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국힘당의 치명적인 약점인 비매력·비호감을 증폭시켰다.
 
중도층에게 물었을 때, 보수와 국힘당의 노선이 더 옳고, 권력에 의한 이익 배분도 더 공정하다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매력이 더 강하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위대한 가치와 비전을 추구하는 정치적 결사체라는 자의식과 체질이 민주당에 비해 더 좋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총선 참패 이후 쏟아져 나온 보수 혁신 담론에서도 매력의 관건인 서사와 정체성 정립 담론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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