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70년대 격동기에 신민당 출입기자를 하면서 김영삼 총재 시대를 탄생시킨 5.30 전당대회, 김영삼 의원직 제명, 부마 사태,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12.12 군사 반란, 5·18 등을 지근거리에서 겪었다. 그중에서도 비극적인 역사의 분수령이었던 12.12 사태를 생각하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 대권주자인 3김이 모두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들이 해야 할 소리를 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전두환 세력은 당시 권력공백기의 실세였던 정승화 비상계엄사령관을 체포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환국(換局)을 한 것인데 이 결정적 순간에 3김 진영에서는 성명서 한 장 나오지 않았다. 이런 약세를 본 전두환 세력은 겉으로는 정치 야심이 없다면서도 야금야금 정권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다. 당시에 만약 3김이 앞장서서 제대로 목소리를 냈다면 역사의 물길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힘이 두려워 눈치를 보면서 제때에 할 말을 못하면 비극이 온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지금 집권당인 국민의힘이 할 말을 못 하고 있으나 언론이 나서고 있다. 그중에서 조선일보의 한 논설위원은 7월10일자 칼럼 ‘文에겐 있었고 尹에겐 없는 것’에서 “윤석열정부엔 문재인정부 초기의 ‘노 맨’과 같은 인적 통제 장치가 아예 없었다. 김건희 여사 문제는 사실상 성역이나 금기어로 취급됐다”면서 김 여사와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자랑하고 줄 대려고 접근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제어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 하는 참모는 회의에서 배제되거나 자리에서 밀려났다, 대선 공약이었던 가족 감시 특별감찰관도 2년 넘게 공석이다, 등등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정국 조성 핵심에 김 여사 의혹이 있는데도 윤석열 대통령이나 참모진은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누군가는 ‘노’라고 외쳐야 한다, 경고등을 켜고 제동을 걸지 않으면 결국 사고가 터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12일자 또 다른 칼럼 ‘박근혜 정부가 왜 무너졌겠나’는 당시 청와대 비서관의 후회를 인용하여 “한 번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탄핵까지 당하지는 않았을 장면이 100개는 된다”고 했다. 당시의 청와대와 집권당이 너무 무능하고 둔감했다는 얘기다. 이 말은 당장 오늘에 대입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또 “김무성과 유승민 두 사람은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열심히 도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을 찍어 누르면 당연히 반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전제군주제에서 볼 법한 전근대성을 느꼈다”고 썼다. 이어 “문제는 여권의 현 상황이다. 박근혜정부 때처럼 ‘이것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일들이 또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고 물었다.
다음날인 7월13일자 칼럼 ‘김 여사의 그림자’에서는 “크고 작은 스캔들이 잇따르면서 국정 곳곳에 김 여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인상이 굳어졌다. 불길하고 또 불길하다”고 썼다. 또 “집권당 대표 선거에도 ‘김 여사 문제’가 등장했다. 난데없는 ‘읽씹(읽고 무시함)’ 논란으로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배신이냐 아니냐보다 더 충격적으로 느껴진 것은 우리가 모르는 물밑에서 김 여사의 독자적 소통 채널이 가동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적 권한 없는 대통령 부인이 사적 채널을 통해 대국민 사과라는 국정 현안을 여당 대표와 직접 협의하려 했다”며 김 여사가 공개 사과 의사가 있었다면 대통령실 정무 라인과 상의해야 마땅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여사는 ‘댓글 팀’ 얘기도 꺼냈다. ‘댓글 공작’ 루머에 대통령 부인이 등장한다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최근 미국에서도 탈북인과의 행사에서 “여러분의 용기 있는 행동이 앞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저와 우리 정부가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대통령 부인의 어법이 아니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번 총선 전에는 디올백 사건 사과와 함께 아예 용산에서 손을 떼고 사가로 내려가 있으라는 동아일보 칼럼까지 나왔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또 ‘육사 위에 여사’라는 전두환 정권 때의 유행어까지 동원하여 자중을 촉구하는 칼럼도 나왔지만 변화의 결단은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윤 대통령 지지율은 총선 당시에도 겨우 30% 내외였고 지금은 그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보수 재집권은 어렵다.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경제·물가 등 민생 문제 외에 대체로 윤 대통령의 고집과 불통·김 여사 문제가 부정 평가의 20% 정도를 점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0월24일 최순실의 국정개입 보도가 터져 나가자 삽시간에 지지율이 20% 중반대에서 17%로 뚝 떨어졌고 11월에는 5%까지 추락했다. 언론의 ‘연속 경고음’을 무시하고 계속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한다면 필경 대형 사고를 피할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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