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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공영방송에게 드라마란?
글로벌 OTT 전유물이 되어 버린 한국 드라마
국민 여가 책임져 왔던 공영방송 드라마 몰락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13 06:31:30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2017년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 진출을 선언했을 때 한국의 방송사업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전문가들도 잠깐 들어왔다가 스스로 물러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치 1867년 강화도에서 미군에게 처절하게 패배하고서도 “우리는 항복한 적이 없고, 저들 스스로 물러갔으니 이긴 것”이라고 정신 승리했던 조선 조정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우습게 여겼던 글로벌 OTT들이 이제 한국 방송시장을 완전히 초토화시키고 있다. 반백 년 넘게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던 방송 생태계를 송두리째 와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포털과 모바일 미디어에게 시장을 침식당해 그로기(groggy) 상태에서 결정타 한 방을 맞은 것이다. 급기야 성장 가도를 달려왔던 유료방송조차 VOD시장을 점령당하면서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OTT들의 주력 장르는 드라마다. 정확히 말하면 ‘미니시리즈’라고 하는 10여 편 내외로 구성된 단편 드라마들이다. 이제껏 KBS·MBC·SBS 등 지상파방송의 독과점 구조를 지탱해 온 원천은 뉴스와 드라마였다. 하지만 뉴스 독점은 2009년 종합편성 및 뉴스채널이 추가 승인되면서 사실상 와해되었다. 지금은 인터넷 포털과 SNS 같은 인터넷 매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겨 버린 듯하다.
 
이런 공세에도 드라마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가 대표적인 ‘고비용 고효율’ 콘텐츠였기 때문이었다. 케이블TV 같은 유료 방송의 거센 도전에도 지상파방송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드라마 제작에 안정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지상파방송의 창구 독점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드라마 장르를 독점하고 있는 지상파방송사들의 약탈적 외주제작 관행은 오랫동안 한국 방송의 최대 정책 현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10여 년 전부터 지상파방송 드라마 아성에 도전한 CJ계열 채널과 jtbc의 등장은 양적·질적으로 드라마 시장을 크게 확대시켰다. 물론 이들 채널의 드라마 시장 진입이 성공적이었는지, 방송 제작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평가가 상반된다. 하지만 이런 논란조차 글로벌 OTT가 진입하면서 한가한 일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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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OTT들이 가입자 확보를 위해 저가 경쟁에 뛰어들 것이고, 그것은 한국의 견고한 저가 방송시장 장벽에 막혀 스스로 물러갈 것이라는 희망 섞인 국내 방송사들과 전문가들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글로벌 OTT들은 어차피 규모의 경제가 안되는 한국의 가입자 시장이 아니라 콘텐츠라는 상류시장을 목표로 했다. ‘오징어게임’ ‘미스터선샤인’을 시작으로 드라마 제작 시장을 집중 공격한 것이다. 이들에게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경쟁력을 갖춘 전형적인 ‘저비용 고효율’ 콘텐츠였기 때문이다.
 
글로벌 OTT의 한국 시장 진출은 악성 외주제작의 관행에 신음해 온 방송영상 제작 업계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처럼 보였다. 정부 역시 글로벌 OTT들의 투자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신임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처음 만난 사람이 넷플릭스 CEO였을 정도다. 민초들까지 맨손으로 저항했던 신미양요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그러면서 잠시 한국 방송 제작 시장은 초유의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글로벌 OTT들의 물량 공세는 당연히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특히 소수의 인기 작가와 출연자들은 금값이 되어 버렸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국내 방송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드라마를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하는 것밖에 없었다. 실제로 지상파방송의 주간 미니시리즈 편성 편수는 2020년 평균 10개에서 2024년 현재 3~4편으로 절반 이하 수준으로 급감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대하사극과 아침 드라마도 없어졌다. 낮은 시청률과 광고 수입 감소로 고전하던 방송사들의 선택은 결국 고비용 콘텐츠 드라마를 줄이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국 드라마는 글로벌 OTT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KBS·MBC 같은 공영방송사들도 드라마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드라마는 한낱 구색 맞추기 상품일 뿐이다.
 
이는 드라마가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볼 수 있는 클럽재(club goods)나 사유재(private goods)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드라마 특히 공영방송 드라마는 대다수 국민의 여가를 책임지는 아주 중요한 공공재(public goods)다. 특히 수백만에 이르는 저소득 소외계층에게 지상파방송사 드라마는 저녁 여가시간을 책임지는 국민 엔터테인먼트다. 경영 압박과 제작비 상승을 이유로 드라마를 과감하게 축소하는 공영방송과 방송영상 시장의 몰락을 방관하고 있는 정부 역시 책임 회피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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