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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A와 대한민국 [50] 魔王 김정일의 민낯 ③
조국을 사랑한 마이클 이의 美CIA 40년 생생한 증언
마이클 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8-23 06:30:20
 
▲ 마이클 이(Michael P. Yi) 박사
[편집자 주]
 
8·15광복 이후 정부 수립, 6·25전쟁과 빛나는 산업화 시기를 거쳐 대한민국은 오늘에 이르렀다. 격동의 한반도, 美CIA 요원으로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마이클 이 박사의 숨 막히는 체험…. 북한 정권의 실체와 광주5·18 등 좌경 친북세력이 주도한 사건들에 관한 증언과 분석, 급변하는 국제정세의 소용돌이 속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그의 이야기들이 값지다. 이에 美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살아온 40년 세월을 담은 그의 저서 ‘CIA와 대한민국’을 지면에 연재한다.
 
 
괴짜 기질과 잔인한 인간성
 
김정일은 젊은 시절 승마와 쾌속 보트를 좋아했고 직접 차를 몰 때는 언제나 과속 운전을 했다. 낙마나 자동차 사고 같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뭔가 일이 벽에 부딪히면 즉흥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곤 했다. 또한 그는 자기방어를 위해선 말할 수 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를 지켜본 영화감독 신상옥이 지적했듯이 그는 어떤 자리에서 누가 맘에 들거나 들지 않으면 합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즉석에서 승진시키거나 해고해 버렸다. 그는 일개 평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더라면 열등감 많은 겁쟁이로 자라 물려받은 재산이나 탕진할 그런 위인이었다. 그러나 권력과 그가 자라난 사회적 환경이 그를 독재자 김정은으로 만든 것이다.
 
모든 독재자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잔인한 것이고 또 하나는 위기에 몰렸을 때 돌발적인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1995년 이후 북한의 경제가 파탄되어 수백만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어 나갈 때 김정일은 측근들에게 “병들고 노동력이 없는 인민은 빨리 죽어 없어지는 게 낫다. 철통같이 뭉친 군대와 당원 300만 명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공화국은 건재할 것이다”고 말했다.
 
반대 세력의 도전
 
 
김정일은 젊었을 때 호위사령부에서 몇 년간 근무한 것 외에는 군대 생활의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런 그가 1992년 4월21일 일약 ‘원수’의 계급을 받고 ‘위대한 전략가’ ‘위대한 장군님’으로 불리게 되자 일부 엘리트 군 간부들이 반발했다. 그리고 드디어 1992년 말∼1993년 초에 소련 프룬제 군사대학 출신이 중심이 된 11명의 장성이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사전에 적발되어 실패했다. 1995년 초엔 청진에 있는 6군단이 반(反) 김정일 음모에 가담했고 상당수의 국가안전보위부 간부들이 연루되어 숙청당했다.
 
그 후 1997년에 당 비서 황장엽이 남한으로 망명하고,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많은 주민이 줄지어 중국으로 탈출하고, 1998년 말에는 보안담당 당 비서 계응태의 사위가 또 반 김정일 음모에 가담해 총살당했다. 이에 김정일은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다. 군부 내에 보위사령부를 신설해 탄압의 강도를 높였고 그 이후 매년 군인과 민간인을 합해 약 300명을 공개 처형했다. 그는 당시 한 측근에게 “주위에 누가 나의 적인지 알 수가 없어서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으며 가끔 악몽을 꾼다”고 했다.
 
지구상에서 권력 투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북한이다. 소련의 앞잡이가 된 가짜 김일성은 진짜 김일성 노릇을 하기 위해 항일 투쟁사를 허위 날조하고 일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수많은 정적을 죽이면서 국내파·연안파·소련파·갑산파 등을 반당 종파로 몰아 흔적도 없이 숙청했다. 그리고 그 아들 김정일도 권력 세습에 반대하는 수많은 간부를 죽이고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는 등 숙청했다.
 
 
▲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아버지 김일성 옆에 있는 김정일. 이때 김정일은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추대되며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고 1992년 4월21일엔 일약 ‘원수’의 계급을 받고 ‘위대한 장군님’으로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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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세습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로 간 고급 간부로는 1975년 9월 정치국 후보위원 유장식·1977년 10월 부주석 김동규·1982년 1월 국가보위부 부장 김병하와 부총리 김경연·1986년 2월 부총리 홍성룡·1988년 12월 내각 총리 이근모 등이 있다. 아버지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과 특별한 보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협적인 존재로는 이복동생인 김평일이 있었으며 그다음으로 남일과 오진우 등이 있었다.
 
 
김일성 사망 전후
 
김정일은 공식 후계자가 되고부터 ‘당 중앙’이란 호칭으로 불리며 노동당의 전권을 장악했고, 김일성은 외교사절 등을 접견하는 정도의 공식 석상에만 모습을 나타냈다. 이때 이후로 호위사령부가 개편되고 제1총국은 김일성 담당 호위 업무를, 제2총국은 김정일 담당 호위 업무를 맡았는데, 제2총국 대원들은 복장·급식 등 모든 대우가 제1총국 대원들보다 월등하게 좋았다.
 
그 후로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김일성의 집무실과 사저를 전화 도청했고 김일성의 동정을 일일이 파악하고 간섭했으며 그 도가 지나쳐서 한때는 김일성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준 것을 후회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1994년 7월25일 평양에서 열기로 예정돼 있던 남북정상회담을 김정일과 군부가 반대했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오로지 전쟁이나 혁명적 방법으로 남북통일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반해 김일성은 북한의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한과의 경제교류를 역점으로 하는 협상 전략을 짜고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자신이 평소에 인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늦어도 1995년까지는 통일의 기틀을 다지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그는 7월25일에 약속대로 김영삼 대통령이 2박 3일간 평양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나서 답방 형식으로 자신이 서울을 방문하면 ‘남조선 인민들이 위대한 김일성 동지를 환영할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김일성은 남한 대통령 김영삼과의 대담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향산(묘향산) 휴양소에서 주요 간부들과 여러 날 동안 밤낮으로 토의하다가 과로에 지쳐 1994년 7월8일 목욕탕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남한에선 일부 전문가들이 당시의 상황을 분석해 부자간에 합의 없이 김일성이 일방적으로 남북정상회담을 강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때 휴양소에 같이 있었던 후처 김성애와 비엔나에 있는 딸 김경진과의 국제전화 내용을 모 기관에서 포착했는데 통화 내용을 분석해 보면 위에서 언급한 사실 외에 다른 의혹을 제기할 아무런 단서가 없다.
 
이모를 죽이다
 
 
김일성 사망 직후,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김경희가 오빠 김정일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우리에게 이모가 한 분 계시다는데 왜 내게는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이유로 우리 이모를 정치범 수용소에 보냈습니까?”
 
이 사실이 소문이 되어 당내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 당에서 조사한 결과 김일성의 처 김정숙에게는 남동생(김기송)과 여동생(김영숙)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김기송은 만주에서 항일 빨치산 전투 중에 전사했고 김영숙은 제18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당시 같은 18수용소에 갇혀 있던 전직 당 간부 신찬도가 우연히 김영숙을 알게 되었는데 ‘최고 지도자의 이모가 어째서 정치범 수용소에 와 있는 걸까, 분명히 뭔가 억울한 사연이 있을 것이다’는 생각에 그녀의 존재를 김정일에게 알리기로 했다. 그는 그것이 공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수용소 경비원 한 사람과 공모해 녹음기를 구입해 김영숙의 육성을 녹음했다. 그러고는 그 녹음테이프를 은밀히 김정일에게 전달했다.
 
녹음테이프를 받은 김정일은 장성택을 불러 “내가 왜 더러운 속옷을 사람들이 보는 빨랫줄에 걸어야 하느냐”면서 “자네가 알아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라”고 지시했다. 무식하고 분별력이 없는 김영숙이 녹음테이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김일성이 우리 언니 김정숙의 첫 남자가 아니다. 언니는 중국 부호의 첩이었다.”
 
이 말을 들은 장성택은 그날 밤, 그 녹음테이프를 전달하는 데 협조한 사람을 포함해 관련자 9명을 체포하고 정치범 수용소로 보냈다. 그리고 김정일의 이모 김영숙·녹음을 한 신찬도·녹음기 구입에 협조한 수용소 경비원, 이 세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렸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김경희는 오빠 김정일과 남편 장성택을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증오하기 시작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 美 연방정부 40년 근속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국방정보국) 16년·CIA(중앙정보국) 24년)
△ 1976년 미국 외무고시 합격
△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정치학 박사
△ 美 국무성 동아시아 문제 수석연구원
△ 美 국무성 외교연수원 교수
△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관
△ CIA 한·미 안보협력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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