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던 시기에 국제안보 환경은 미·소 간의 냉전 구도가 심화되어 갔고,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1949년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면서 미국은 일본을 중심으로 소련의 팽창정책을 봉쇄하려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수립 후 북한의 게릴라 침투와 체제 전복 활동·급속한 군사력 증강에 위협을 느껴 주한미군 철수를 저지 및 지연시키면서 한미동맹 결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미 군정으로부터 정부 수립과 함께 5만 명 규모의 남조선 국방경비대을 물려받아 조선경비대를 육군으로, 해안경비대를 해군으로 편입하고 1948년 11월30일 공포된 국군조직법에 따라 각종 군 조직을 법제화했다. 아울러 군내 대대적인 숙군작업을 통해 좌익 세력을 척결함으로써 내부 기강을 확립해 나갔다.
이승만정부는 정규군 10만 명과 예비군 20만 명 건설 계획을 수립하여 국채 발행과 미국의 군사원조 획득을 통해 군사력 건설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국방 예산의 부족과 미국의 소극적 군사 원조로 국군은 장비가 빈약하고 훈련이 덜 된 10만여 명 정규군과 20만여 명 규모의 청년방위대를 보유한 상황에서 6·25전쟁을 맞게 된다.
1950년 7월7일 개최된 국제연합(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군이 무력으로 대한민국을 공격한 것을 평화 파괴 행위로 확정하고 한국을 지원하는 모든 회원국의 군사력 및 기타 지원을 미국이 주도하는 통합군사령부가 관장하도록 했다.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된 맥아더 장군은 우선 극동군사령부를 통해 유엔군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다가 7월24일에 정식으로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UNC)를 설치했다.
미 제8군이 7월13일 한국으로 이동하자 일본에서 점령군 임무를 수행하던 워커(Walton H. Walker) 중장이 한반도에서 미 육군의 작전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하는 조치를 직접 취했는데, 7월14일 맥아더 장군에게 보낸 개인 서신에서 현 작전 상태가 계속되는 동안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을 이양한다고 밝혔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제2국민병으로 편성된 국민방위군의 무장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나 미국은 한국군 장교와 하사관들의 리더십 부족을 문제 삼으면서 국민방위군 무기 지원을 거부했다. 이후 미국은 북위 38도선 근처에서 전선이 고착되자 전쟁 자체를 종결할 것을 추진했다. 그러면서 38도선 재설정 및 휴전에 대한 한국의 반론을 무마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한국군 증강 조치를 본격적으로 강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한국군을 10개 사단 25만 명 규모로 무장시키려는 방침을 확인한 이승만 대통령은 더 많은 지원을 받고자 했으며, 1952년 4월23일에는 10개 사단을 추가하여 육군을 20개 사단 규모로 확장할 것을 신임 유엔군사령관 리지웨이 대장에게 요청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협상이 계속되는 동안 수차에 걸쳐 완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유엔군의 휴전 협상 추진을 견제하려 했다. 미국 측의 무마에도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다가 점차 휴전 협상의 타결 가능성이 확실시 됨에 따라 종래의 휴전반대 태도를 바꾸고 휴전 협정 체결에 동의하되 그 선행 조건으로 미국 측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것과 한국군 증강을 위한 지원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휴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3년 6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은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에게 2만7000명의 반공포로를 석방하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이러한 결단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미국에게 재촉하기 위한 유일한 승부수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로버트슨 미국 국무차관보가 6월25일부터 7월12일까지 서울을 방문해 이승만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한·미 간 상호안전보장조약의 체결, 육군 20개 사단 증강과 이에 상응하는 해·공군의 확장, 장기 경제원조에 대한 보증 등을 확약했다. 또한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자 그해 10월1일 상호방위조약도 공식적으로 체결되었다.
결론적으로 한·미 간에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한국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자체의 군사 능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국가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휴전 후 육군은 4개 사단을 증편하여 20개 사단 65만5000명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해·공군도 부대를 증편했다. 1954년 11월에는 군사 및 경제면에서의 지원을 약속한 ‘한·미합의의사록’에 의해 한국군이 72만 명의 병력과 10개 사단 규모의 예비사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미국의 지원과 7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원조 약속을 받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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