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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타워] 일본의 육식문화 <2> 한국이 전한 고기 맛의 진수
박정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11 06:30:42
▲ 박정석 도쿄통신원
 
“역사적으로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곳은 브랜드가 되지만 단순히 경제 중심이었던 곳은 그렇지 못한 것을 본다. 문화란 선명한 발자취를 남긴다. 그러나 경제만 있던 곳은 전성기가 지나면 쇠퇴와 몰락의 우울함이 남는다.” 일본 유명 작가 사이토 다카시(齋藤孝)의 말이다. K팝·K드라마·영화 등 한류의 인기가 이끄는 한식의 세계화를 보면서 작가의 지적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우리에게 수출이란 가장 가까운 선진국 시장 일본이 대부분 첫번째 표적이었다. K팝 해외시장이 지금이야 오대양 육대주지만 몇 년 전만 해도 80~90%가 일본이라는 기사를 접한 적 있다. 일본의 본격적 육식 문화 역시 한반도 발(發)이었다.
 
메이지시대 육식 해금령(1871년) 이래 서구문화 모방의 일환으로 육식이 권장됐으나 일본인들에게 육고기 맛을 알게 만든 것은 1920년대 후반 관서지방 경제 중심지인 오사카에 조선인들의 야키니쿠(燒肉)점이 생기면서부터다. 1200년간 이어진 육식금지령 아래 일본에서는 고기의 발골법(拔骨法)이 발달할 수 없었다. 야키니쿠가 한식의 대표 메뉴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일본 야키니쿠점에서 ‘갈비’ 등 고기 부위를 지칭하는 한국어, 상추나 깻잎에 싸서 먹는 습관, 사이드 메뉴인 육개장·내장·양념장·김치·깍두기, 후식형 냉면 등이 세트처럼 돼 있다. 일본 토종 쇠고기 와규(和牛), 마블링 고운 이 특급 쇠고기의 출현도 한우 없이 말할 수 없다. 조선총독부 기록에 근거해 국립축산과학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와규는 일제시대 한우 약 150만 마리를 가져다 종자를 개량한 것이다. 
 
근대 일본의 육식 문화 출발은 관(官) 주도의 서양 요리였으나 서민들의 경우엔 경제 도시 오사카로 유입된 조선인들이 주도했다. 야키니쿠는 아래로부터 시작된 혁명적 식문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사카 근교의 옛 지명 이카이노(猪飼野·돼지치기 들판)에 조선인들의 누추한 시장이 만들어졌다. 특유의 식재료와 잘 발골된 육고기와 내장 등을 손질해 팔던 이곳은 1세대 재일교포 삶을 상징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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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키니쿠의 개척자는 당시 오사카 조선인 음식점 쇼쿠도엔(食道園)과 츠루이치(鶴一)다. 식탁 위에서 고기를 굽는 것과 구워서 양념(다레)에 찍어 먹는 법을 둘러싸고 이제 원조 경쟁을 할 정도다. 해방 전 조선 요리점으로 불리다 해방 후엔 조선·한국·북한·호르몬(내장) 요리점 등의 호칭을 거쳐 오늘날의 ‘야키니쿠야(家)’ 내지 ‘야키니쿠텐(店)’으로 통합됐다. 남북통일이 먼저 이뤄진 셈이다.
 
야키니쿠는 식민지에서 흘러들어 온 가난한 조선인들의 이미지, 일본인들에겐 익숙치 않은 마늘 냄새 등으로 상류층 일본인들에게 외면당했으나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때 전국 확산의 계기를 얻었다. 당시는 때마침 일본인들의 왜소한 체구를 의식하며 일본 정부가 ‘영양 개선 운동’을 외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현재 일본의 약 2만3000개 야키니쿠점이 현지 식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세계적 맛 평가 미쉐린가이드의 별을 받은 곳이 1024개인데 그중 167개가 야키니쿠점이다.
 
특별 영주자, 이른바 자이니치(在日) 코리안들이 전수한 1차 육식문화가 쇠고기 야키니쿠, 2차는 뉴커머(한일국교정상화 이후 도래자)들이 인기리에 전수 중인 삼겹살이다. 일본 내 한식은 제일 먼저 들어온 쇠고기구이(야키니쿠)·정착한 지 십년 전후인 순두부 정식·삼겹살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특히 삼겹살은 명실공히 한국이 낳은 돼지고기 음식의 세계적 브랜드다. 중국 버금가는 돼지고기 수입국 한국이지만 삼겹살의 역사 자체는 의외로 짧다. 산업화 물결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 값비싼 쇠고기 대신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 공급을 위해 우리 정부가 양돈을 적극 장려하면서부터라고 한다. 
 
삼겹살 확산의 또 다른 공로자는 가스버너다. 덕분에 식탁 위에서 고기를 굽거나 탕을 끓이는 게 편리해진 것이다. 1980년 무수한 한·일 제휴 기업의 하나인 한국후지카에서 휴대용 가스버너 ‘블루스타’를 출시하자 점포와 일반 가정에서 삼겹살이 대유행할 수 있었다. 
 
국내 육류 소비량 약 50%가 삼겹살이며 매년 3월3일을 ‘삼겹살 데이’로 부르는 비공식적 기념일이 존재할 만큼 한국인들의 삼겹살 사랑은 극진하다. 원래 ‘세겹살’로 불리다 1980년대부터 통합된 이름 삼겹살이 됐고 1990년대 초 고기를 세분화한 명칭으로 법적 용어가 됐다.
 
일본 내 2차 육식문화의 주역 ‘삼겹살’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한류 식문화이자 일본인들에겐 맛의 신세계다. 쇠고기 야키니쿠에 비해 전국적으로 보면 아직 생소한 메뉴지만 먹어 본 사람은 누구나 감탄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삼겹살 메뉴가 블루오션이라는 뜻이다. 젊은 뉴커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 일본 관서지방의 경제 중심지 오사카에 있는 '쇠고기구이' 야키니쿠점 쇼쿠도엔(食道園)의 초기 모습. 20세기 일본의 본격적 육식문화는 한반도발(發)이었다. 특히 야키니쿠의 유행은 아래로부터의 식문화 혁명이라 할 만하다. 쇼쿠도엔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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