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타계한 프로 여자배구 조혜정 전 GS칼텍스 감독에게는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한국 배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전설적인 선수였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164cm의 단신 조혜정이 서전트 점프 68cm·러닝 점프 72cm라는 가공할 점프력으로 펄펄 날면서 180cm가 넘는 상대 팀 선수들의 블로킹 숲을 뚫고 강 스파이크를 내리꽂자 외신들이 지어 준 별명이다. 놀라운 점프력을 앞세워 강한 스파이크를 시원스럽게 날려 상대 팀 코트를 맹폭한 조혜정이었다. 조혜정 등의 활약으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한국 스포츠 사상 구기종목으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고, 조혜정은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부산 출신의 조혜정이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된 건 부산여중 시절부터 크지 않는 키 때문에 받아 주겠다는 팀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단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날마다 줄넘기를 하면서 육상선수 출신인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탄력과 유연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코트를 누빌 수 있었다. 그는 신체적인 단점을 극복하고 눈물겨운 노력으로 ‘만들어진 선수’였다. 요즘 여자배구에서 잘 나가는 김연경(흥국생명)의 어깨에도 못 미치는 키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배구를 시작해 서울 숭의여고 3학년이던 1970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조혜정은 올드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그는 걸그룹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유명했다.
국내 무대에서는 실업팀 국세청과 대농(미도파)에서 현역 생활을 하다가 무릎 부상으로 1977년에 국내 무대를 은퇴하고 1979년 이탈리아 무대로 건너가 2년간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다 1981년에 선수 생활을 완전히 마감했다.
그후 우리나라 배구에서 그와 같은 신체 조건으로 성공한 여자 선수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170cm의 장윤희 정도가 꼽힌다. 여자선수 170cm이면 남자배구 185cm정도 될 듯하다. 남자배구도 마낙길·신진식·석진욱 이후로 그 정도 키의 스타 선수는 끊겼다. 기술 배구를 본 지 오래다. 세터가 공을 띄우면 190cm 안팎의 외국인 선수가 힘으로 욱여넣는 게 요즘의 한국 배구다. 한국 선수는 리시브만 열심히 할 뿐이다.
조혜정은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외에도 한국 최초 프로배구팀 여자 감독이었다. 2008년 한국프로배구연맹(KOVO) 경기 운영위원으로 현장에 복귀해 경기 감독관 등으로 지내다가 2010년 4월 서울을 연고로 하는 GS칼텍스 팀의 감독이 되어 프로배구는 물론 국내 4대 프로스포츠 통틀어 사상 최초의 여성 사령탑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최초의 여자 감독이라는 것은 당시 여자배구 선수 하면 곧 조혜정을 떠올릴 정도였음을 증명한다.
물론 스포츠계의 여성 지도자 진출 기반이 되어 있지 않을 때여서 그는 프로 감독으로서는 처참히 실패했다. 천하의 조혜정도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징크스를 깨뜨리지 못한 채 코트를 떠난 이후 돌아오지 않았다.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서 활기차고 즐거운 팀을 만들겠다던 조혜정의 화끈했던 포부와는 달리 이렇다 할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 주지 못했다. 결국 4승 20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성적 부진으로 한 시즌 만에 사퇴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사임 후에는 병원 신세까지 졌다고 한다.
1981년 은퇴 후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감독 대행을 지낸 조창수와 결혼했을 당시 스포츠 커플로도 큰 화제에 올랐다. 슬하의 두 딸 조윤희·윤지 자매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프로가 됐으니 일가족 모두 프로 선수 출신인 셈이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써 가며 투어를 뛰는 두 딸을 억척스레 뒷바라지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은 키로 배구 코트를 휘저었던 그는 병마와도 호기롭게 싸웠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췌장암과 싸우던 조혜정은 임종하기 전 평생 친구였던 배구를 향해 편지를 보내 주위를 숙연케 했다. 그는 편지에서 “때론 내가 널, 또 가끔은 네가 나를 힘들게 한 적도 있었다. 끈질긴 60년 인연이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배구야, 이제 난 너와 더 이상 친구를 할 수가 없게 됐단다”고 작별을 고했다.
말기암 환자로서 고통을 참아 가면서 눈물로 편지를 쓴 것은 “수많은 내 친구 중 너에게만은 직접 이별 통보를 하는 게 너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강조해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배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드러낸 조혜정이었다. ‘나는 작은 새’ 조혜정은 이제 하늘로 날아갔다. 파이팅 넘치며 늘 열정적이던 조혜정 전 감독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빈다.
박병헌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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