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얘기를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느새 신문 지면이 내란죄 문구로 뒤덮여 버렸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불난 집에 불 끄러 들어갔다가 방화범으로 몰렸다”는 강경식 부총리의 말이 떠올랐다.
강 부총리는 외환위기 실상을 축소 보고해 환란을 초래했다는 혐의로 기소까지 되었다. 하지만 2004년 5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되었다. 그러나 대중은 여전히 강 부총리를 IMF 주범으로 기억할 따름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한 처지에 몰린 형국이다. 거대 야당의 입법독재에 맞서 헌정을 수호하겠다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불과 며칠 사이에 내란 혐의로 입건되는 신세가 되었다. 매주 탄핵을 발의하겠다는 민주당의 엄포 앞에 마치 독 안에 든 쥐 같은 신세다.
이 사태가 초래된 데는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책임도 크다. 그러나 그들은 폭주를 멈출 기미가 전혀 없다. 감사원장·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법무부 장관과 경찰청장을 추가 탄핵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당과 상의해 국정을 수행하겠다고 한 한덕수 국무총리도 내란 가담자라며 탄핵하겠다고 한다.
계엄의 빌미가 된 게 초유의 예산삭감이었는데 7000억 원을 더 삭감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정도면 마치 미치광이의 총기 난사와 다름없다. 브레이크 없는 차량이 인도로 질주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이젠 명분 따위도 안중에 없는 것 같다. 눈에 거슬리면 무조건 민주당의 탄핵·특검·청문회·국정조사의 제물이 되는 지경이다.
이렇게 민주당의 입법독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계엄과 내란을 혼동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 병력으로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계엄에는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이 있는데 비상계엄 시에는 영장제도,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헌법 제77조가 인정해 준 대통령의 비상대권이다. 합헌적 권한을 행사한 이유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이는 대통령의 계엄선포문에 잘 나와 있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국회는 22건 탄핵 소추를 발의했다. 이번 국회 출범 뒤에도 10명째 탄핵이 추진 중이다. 건국 이후 전혀 유례없는 상황이다. 판사를 겁박하고, 검사를 탄핵하여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정안전부 장관·방송통신위원장·감사원장·국방부 장관 탄핵 시도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다. 마약범죄 단속·민생치안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본질의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
재해대책예비비 1조 원,아이돌봄 지원수당 384억 원, 청년일자리·심해가스전 개발사업 등 4조1000억 원 삭감, 심지어 군 초급간부 봉급과 수당 인상·당직근무비 인상 등 군간부 처우 개선비조차 제동을 걸었다.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예산 폭거이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다.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다.”
상당 부분 공감이 간다. 민주당의 폭주는 대부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로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했다.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계엄 선포의 목적을 밝혔다.
계엄을 선포한 현 상황이 과연 헌법에 언급된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인지, 군대를 동원해야만 질서를 유지할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인정한다. 그래서 헌법은 계엄 요건에 맞지 않으면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있고 대통령은 이를 따르도록 정했다. 그래서 국회가 즉시 해제를 요구했고 대통령이 이를 따랐다. 그렇다면 헌법은 준수된 것이다.
계엄할 상황이 아닌데 선포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헌법적 권한 발동을 두고 난데없이 내란이라고 비약했다. 형법 87조 내란죄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 우선 국가권력 배제나 국헌 문란의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계엄 선포문 어디에 국가권력 배제나 국헌문란 목적이 있는가. 계엄선언문에 나온 계엄 목적은 국가와 헌정질서의 수호이다. 계엄을 선포한 자는 현직 대통령인데 현재 권력자가 권력을 배제한다는 것 역시 자체 모순이다.
계엄포고문 제1호의 ‘국회와 정당의 정치활동 금지’가 반헌법적이란 주장이 있다. 그러나 국정 마비의 주범을 국회로 지목한 이상 국회와 정당의 정치활동 금지가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가능하다. 국회가 정말 국정을 마비시켰는지, 범죄자 집단의 소굴인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인지의 여부는 나중에 사법 심사로 가려질 문제이지 계엄의 목적을 부정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내란 행위로서의 ‘폭동’이 있었는가. 계엄군이 투입된 국회의사당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청사가 전복되거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폭동 행위는 일체 없었다. 국회의원들은 신속하게 모여 계엄 해제를 의결했고 대통령은 순순히 계엄을 해제했다. 누구 한 명 다쳤다는 소식도 전혀 없다.
그렇다면 내란죄 성립은 어불성설이다.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 오히려 대표 한 명의 방탄을 위해 입법 독재를 자행하고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는 민주당의 폭거야말로 국가권력 배제와 국헌 문란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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