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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도쿄타워] 재일교포 처우는 대한민국 위상이 좌우한다
박정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2-30 06:30:50
▲ 박정석 일본 도쿄 통신원
문명사란 차별을 만들고 또 이를 극복해 온 역사다. 다름과 우열을 구분하고 각각 특혜와 불이익을 안기는 게 오랜 세월 당연한 것인양 여겨졌다. 그러나 차별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인권의 가치가 발견돼 근대 이래 인권의 범위를 넓혀 왔다. 
 
1948년에 제정된 유엔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대규모 인권 유린을 거쳐 도달한 인권 역사의 정점이다. 이는 1776년 미국 독립선언서와 1789년 프랑스혁명을 통해 제기된 인권에 대한 인식이 20세기 중반 인류 보편의 가치로 선포된 것이었다.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근대적 개념이기에 이 방면의 출발 역시 자연히 조선보다 일본이 훨씬 이른 시기에 진행됐다. 사농공상의 철저한 신분사회인 조선시대엔 평등이나 인권에 대한 의식 개념 따위가 존재할 수 없었다. 관노비의 출산휴가 제도와 월족(刖足·발뒤꿈치를 베는 형벌) 금지령이 있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비의 노동 효율을 위한 것이었지 인권 존중의 결과물이었다고 보긴 어렵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래 모든 분야에서의 개혁을 서두른 일본 정부는 이토 히로부미를 유럽에 파견해 귀국 후 헌법 초안을 작성하게 했다. 당시 일본 헌법 초안 작성 과정에선 독일 통일의 주역 프로이센 헌법이 주로 참조됐다. 독일(프로이센)은 영국·프랑스에 비해 시민사회가 낙후된 지역이었지만 일본 실정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메이지 22년(1889년) 선포된 ‘대일본제국헌법’에선 인권이 인정되긴 했으나 불충분했다. 물론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 출신자들에 대한 2등 국민 취급이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었으니 세계사적 지평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일제시대 조선·대만에서도 고급 군인·문관이 배출된 것을 보면 이들에게도 작게나마 출세 길이 열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구 식민 역사에선 볼 수 없었던 일이다.  
 
1910년 8월 한일합병조약 이후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한반도 출신 사람들은 ‘조센징’으로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특히 1923년 9월1일 관동 대지진의 비극은 참혹했다. 진도 7.9의 궤멸적 재앙이 초래한 생지옥 속에 사망자와 행방불명된 사람이 40만 명에 이른다. “우물에 독을 탔다”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돌며 며칠간 벌어진 조선인 학살은 국내 정치의 혼란을 이방인 희생양의 탓으로 돌린 결과다.  
 
해방 이후 ‘조센징’이 차차 ‘자이니치(在日) 코리안’(약칭 ‘자이니치’)으로 불리게 됐지만 처우에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납세의 의무를 지면서 공무원 등 공직에 진출할 수 없었고 교사나 대학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 선거권은 여전히 없다. 이명박정부 시절 얘기가 나왔을 때 일본에 재일교포 참정권을 요구하려면 한국도 제도를 바꿔야 한다면서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체류하며 세금을 낸 자국 내 외국인에게 먼저 참정권을 허용해야 한다는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재일본거류민단 인권옹호위원회에서 2017년 ‘일본의 재일한국인 차별에 대하여’라는 보고서를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실 인권이사회 사무국에 제출했다. 개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위해 싸운 재일교포로 김경득(1949~2005) 변호사가 있다. 평생을 인권 운동에 헌신하다 56세라는 이른 나이에 아깝게 타계한 분으로, 재일교포 사회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존경받고 있다. 그는 와세다대학 법학부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나 일본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법연수원 입소를 거부당하자귀화 종용을 물리치고 ‘국적 조항 철폐’ 운동을 벌여 결국 ‘재일교포 1호 변호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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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는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지문날인제도 폐지에도 앞장섰다. 또 ‘일본군 위안부 보상’ ‘도쿄도(都) 관리직 채용 거부’ 문제와 관련해 연이어 소송을 제기했다. 물론 위안부 문제의 실상이 밝혀지기 전의 일이다. 근년에 학술 및 현장 전문가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한국 정부(여성가족부)에 등록된 238명은 취업사기 피해자들뿐이다. 단 한 사람도 이른바 ‘위안부 특별법’이 규정한‘일본군 위안부의 정의’(일본 군·경에 납치돼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한 여성)에 해당하는 사례가 없다. 그럼에도 윤미향과 정대협(정신대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등 친북 세력의 날조 내지 호도인 것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인권 문제로 취급됐었음을 짚어 둔다.
 
이렇게 민단과 함께 재일교포 참정권 운동에 앞장섰던 김 변호사의 자녀 2남2녀 중 3남매가 법조인으로서 부친의 유지를 이어 인권 운동 선두에 서 있다. 그 외에 고(故) 이인하 목사, 서승 교수, 여권운동가 신숙옥 씨·최강이자 씨 등이 있다. 단체로서는 2001년 5월 재일교포변호사협회가 28명 멤버로 설립됐고 1994년 결성된 조총련 산하의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도 있다. 민단은 을사조약 100년째인 2005년을 ‘재일교포 100년’으로 기념했다. 3년여 준비 끝에 2005년 11월24일 중앙회관 별관에 문을 연 ‘재일한인 역사자료관’ 또한 인권 운동의 성과다. 
 
외국인도 일본에서 변호사·대학교수·공무원(3급까지)이 될 수 있는 오늘날, 일본 사회가 많이 달라졌나 싶었는데 다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세금 미납자의 영주권 박탈을 담은 출입국법 개정안이 5월 중의원을 통과한 것이다. 
 
탈세는 잘못이지만 세금 미납엔 여러가지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수 있으므로 특수한 역사성을 지닌 재일교포에겐 가혹한 처사다. 이에 민단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하는 등 강력 반발했다. 재일교포들 삶의 기반이 길게는 4대째 일본에 있긴 하지만 재일교포에 대한 처우는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과 한·일 관계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모국이 더 부유하고 번듯한 나라가 돼 미래지향적 한·일 우호를 가꿔 가길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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