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역사 [44] 겹꽃 피튜니아의 새로운 종자 개발한 우장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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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공원과 거리 장식하는 생명력 강한 꽃 ‘피튜니아’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1-06 14:01:39

▲ 피튜니아는 기르기 쉽고 씨를 언제 뿌리느냐에 따라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 윤상구 사진작가

피튜니아는 우리나라 도시의 길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늦은 봄부터 등장하는 피튜니아는 개화 기간이 길고 생명력이 강해서 전 세계 공원이나 가로등·다리 난간 등을 장식하고 가로변 화단 조성하는 데 거의 빠지지 않는다.

피튜니아는 기르기 쉽고 씨를 언제 뿌리느냐에 따라 꽃 피는 시기도 조절할 수 있다. 즉, 봄에 꽃을 보려면 전 해 초겨울에, 여름에 꽃을 피우려면 이른 봄에 씨를 뿌리면 된다. 꽃 색깔은 흰색·분홍색·노란색·파란색·보라색·자주색·빨간색 등 거의 모든 색이 다 있을 정도로 다양하여 한 자리에서 오래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장춘의 종자 개발

원산지인 아르헨티나에서는 피튠(petu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담배를 뜻한다. 피튜니아 잎 모양은 물론 끈적거리는 부드러운 털이 있는 것까지 담뱃잎과 비슷하고 실제 담뱃잎과 함께 흡연용으로 쓰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같은 이유로 만들어진 ‘애기담배풀’이라는 우리 이름도 있다.

피튜니아가 원산지 남아메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진 것은 1767년경 프랑스 식물학자의 눈에 띈 이후였다. 유럽으로 전해진 피튜니아는 여러 품종으로 개량되고 널리 전파되었다. 피튜니아 육종 중 우리나라 생물학자이며 농학자·원예학자인 우장춘이 만든 겹꽃 피튜니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원래 겹꽃 피튜니아는 암술이 퇴화해 종자 번식이 안 되고 꺾꽂이나 교배를 통해서만 번식이 가능했다. 그런데 꺾꽂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교배는 순종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에 우장춘은 피튜니아 교잡 연구를 통해 종자로 번식하는, 절대 우성의 완전 겹꽃이 피는 종자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다.

우장춘은 1916년 도쿄제국대 부설 농학실과를 졸업하고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취직하면서 당시 우리에게는 낯선 분야였던 육종학 연구를 시작했다. 육종학은 농작물이나 가축을 개량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는 농업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우장춘 논문,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하다

▲ 피튜니아는 우리나라 도시의 길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윤상구 사진작가

우장춘은 1935년 ‘배추속(Brassica) 식물에 관한 게놈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배추류와 양배추류의 교잡으로 유채를 만들어냈고 새로운 종의 탄생은 돌연변이가 아닌, 기존 종의 교잡으로도 가능하다는 걸 이 논문을 통해 증명한 것이다. 우장춘은 1936년 이 연구 성과를 중심으로 도쿄제국대학에서 농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우장춘의 삼각형’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삼각형 꼭지점에 있는 식물들을 교잡하면 삼각형 변에 있는 다른 식물이 탄생한다는 이론이다. 우장춘의 연구 결과는 “종의 분화는 자연 선택만의 결과다”고 주장했던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해야 할 만큼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원래 우장춘이 농림성 산하 연구소 농장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연구하던 주제는 피튜니아였다. 당시 피튜니아는 인기 있는 관상용 식물이었는데 그중 꽃이 화려하지만 번식이 까다로웠던 겹꽃 피튜니아는 희소성 때문에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겹피튜니아의 새로운 종자를 개발한 우장춘의 성과는 학문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대단히 큰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그런데 피튜니아 연구가 그의 박사 학위 논문으로 이어지지 못한 데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1930년 우장춘이 연구하던 농림성 산하 연구소 농장에서 불이 났고 농장에 있던 그의 논문과 실험 자료가 모두 불타버린 것이다. 그 일 이후 우장춘은 피튜니아가 아닌, 유채 연구에 몰두하여 또 하나의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씨 없는 수박을 한국에 소개한 우장춘

해방 후 귀국한 우장춘은 순수 학문 연구보다는 우량 품종 개발에 더 힘을 쏟았다. 전쟁 등으로 피폐해진 우리 국토에서 실용성 높은 원예와 농업 발전이 급선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는 한여름에도 △평지 재배가 가능한 평지 여름 무 △중간 잡종에 의한 애호박 △당도 높은 금싸라기 참외 △고랭지 여름 배추 등 여러 우수한 품종을 육성하였으며 맛 좋고 수확량 많은 품종의 감귤을 재배하도록 제주도에 제안하였다.

우장춘은 ‘씨 없는 수박을 처음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일본 교토대학의 키하라 히토시(木原均) 교수이다. 우장춘은 육종학과 개량종자의 생산성 향상 등을 우리 국민에게 홍보하기 위해 씨 없는 수박과 그 종자를 국내에 소개했는데 그것이 와전된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고 살기 좋아져서인지 공원이든 길거리든 어디서든 꽃을 실컷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피튜니아는 봄부터 가을까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피튜니아뿐만 아니라 다양한 꽃을 늘 가까이 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성껏 화단에 심고 가꾸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여러 품종을 개발하여 기화요초를 만들어낸 학자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다. 꽃이 아름답다고 느껴질수록 그들에 대한 감사함이 몇 배로 커진다.

[글 황인희 사진 윤상구]

스카이데일리 skyedaily@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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