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산하를 되찾은 뒤에야 천자(天子)를 알현하리라.” 송나라의 명장 악비(岳飛)가 지었다는 만강홍(滿江紅)이란 시의 비장함 넘치는 마지막 구절이다. 악비는 사후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얻을 정도로 우국충정의 화신과도 같은 인물이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악비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에 능했던 그는 손오병법(孫吳兵法)을 익혀 장수로 출사했다. 당시 송나라는 여진족의 금나라에 강산이 유린당하던 처지였다. 수도 동경(東京) 개봉부(開封府)마저 적에게 함락되자 악비는 고토 수복을 위해 떨쳐 일어섰다. 어머니는 아들의 등에 진충보국(盡忠報國·충성을 다해 나라의 은혜를 갚다) 네 글자를 친히 새겼다.
불패인 악비의 군대는 민폐도 끼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가 이르는 곳에서마다 여진족은 패해서 달아났고 백성들은 앞다퉈 술과 고기를 바쳤다. 악비는 마지막 북벌(北伐) 때는 개봉부에서 불과 20여㎞ 떨어진 곳까지 진격하는 기염을 토했다. 옛 산하를 되찾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런데 간신들이 사달을 일으켰다. 재상 진회(秦檜)는 강력한 금군(金軍)에 겁을 집어먹고 “돈과 구걸로 평화를 사자”고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금나라와 내통까지 했다. 금군 대장 올출(兀朮)은 “악비를 죽여 주면 화의를 맺겠다”고 밀약했다. 평소 악비를 시기하던 진회는 악비를 반역자로 몰아 기어이 처형했다. 구국의 영웅은 검리상전(劍履上殿)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 채 서기 1142년 한 맺힌 두 눈을 감았다.
청백리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한세충(韓世忠) 등은 논리적으로 악비를 변호하면서 그를 참한 이유가 뭔지 조목조목 따졌다. 할 말이 궁해진 진회가 내놓은 답변은 실로 걸작이었다. “막수유(莫須有·아마 죄가 있을지도 모르지).” 한세충은 대갈(大喝)했다. “그 세 글자로 천하를 납득시킬 수 있겠소!”
종북좌파로부터 강산을 되찾고서 국민을 뵙겠다던 대통령에 대해 국회가 탄핵 소추를 의결했다. 야당은 관저 앞 대통령 지지 시민 독려에 나선 여당 의원들과 대통령 지지율 상승 결과를 내놓은 여론조사 기관과 일반 국민마저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하지만 만인이 납득할 이유는 찾기 힘들다. 야당의 태도는 ‘막수유’와 다를 바 없다.
진회는 오늘날까지도 두고두고 간신·역적의 대명사로 지탄받고 있다. 두 팔이 결박돼 무릎 꿇은 진회의 동상에는 수백 년간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저주를 퍼부었는지 “(공공보건을 위해) 침 뱉지 마시오”라는 팻말까지 있다고 한다. 야당의 앞날이 그려진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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