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보수)을 들먹여 새것(진보)을 비방하는 자는 멸족하십시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에 기록된 진(秦)나라 승상 이사(李斯)의 표문이다.
진시황 영정(嬴政)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 끝에 천하를 통일했다. 통합은 급진적이었다. 옛 육국(六國)의 도량형·화폐·법률 등은 물론 수레바퀴 폭까지도 일원화하고 따르지 않는 이는 엄벌했다. 아방궁·만리장성 등 대토목공사를 일으켜 백성의 재산·노동력도 착취했다. 두 발로 일어설 수 있는 남자는 모조리 인부로 차출됐으며 혼백이 돼서야 귀향했다. 단 1초라도 공사장에 늦게 도착한 이도 극형으로 다스렸다.
맹강녀곡장성(孟姜女哭長城) 설화는 당대의 참상을 묘사한 작품이다. 맹강녀는 옛 제(齊)나라 지역에 살던 처녀였다. 남편 범기량(范杞良)과 혼인해 알콩달콩 살림을 꾸리던 것도 잠시, 범기량은 장성 공사장으로 끌려갔다. 혹한이 몰아친 그해 겨울까지도 감감무소식이자 맹강녀는 북방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장성 최동단에 도착한 그녀가 남편의 이름을 부르짖자 한 병사가 “죽어서 장성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맹강녀가 사흘 밤낮 오열하자 성벽이 무너지며 유골이 드러났다. 그렇게 남편을 장사지낸 맹강녀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런 지경이니 민심이 올바를 리 없었다. 식자들은 새 시대의 폭정을 성토하고 옛 정신의 부활을 촉구했다. 영정은 여론 경청 대신 기원전 213·212년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켰다. ‘가짜뉴스’ 차단 명분으로 매 가구를 샅샅이 검열해 찾아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들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산 채로 파묻어 반대 여론을 ‘입틀막’한 것이었다.
대가는 엄정했다. 백성은 봉기해 압제자들을 무찔렀다. 수도 함양(咸陽)은 잿더미가 됐으며 영정이 천년제국이라 호언했던 진나라는 단 2대 만에 멸망했다. 영정이 그토록 ‘입틀막’하고자 했던 보수의 가치·진실의 목소리도 훈고학(訓詁學)을 통해 부활했다.
야당발(發) ‘카톡 계엄’ ‘카틀막(카카오톡 틀어막기)’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야당 관계자는 ‘가짜뉴스’를 ‘일반 국민’이 단순히 퍼 나르기만 해도 내란 선전으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런데 가짜뉴스의 기준을 사실상 야당이 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 맘에 안 들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란 해석이 줄을 이었다. 야당은 제3자 제보 시 고발이라는 취지로 해명했으나 결국엔 국민 카톡방을 친야(親野) 세력 누군가가 들여다봐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검열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미 많은 국민이 동요 중이다. 영정의 말로가 재현될 수 있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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