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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 반역의 메달
김대중의 노벨상 프로젝트 [77] 정권 잡은 김정은 ‘리영호 1호 숙청’… 선군정치 강화
김일성 100회 생일 맞아 대규모 軍열병식 열고 새 지도자로 등장
2010년 천안함 폭침‧2011년 연평도 포격… 대남 도발 의지 과시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03 06:30:48
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 도널드 커크(Donald Kirk) 국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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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김정일 장례식의 차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장례식에서 나타난 가장 뚜렷한 차이는 후계자의 모습이었다. 김일성의 장례식에서는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이 운구차에 관이 실려 출발할 때 등을 제외하고는 중계 화면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 입장에서는 과연 김정일이 정말 권력을 이어받은 게 맞는지, 그가 진정한 후계자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장례식 전 과정에서 김정일의 개입이나 존재감은 없었다.
 
김정일이 김일성 사후 후계자로 공식 확인되기까지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됐다. 당시 이에 대해 효자는 아버지의 3년상을 치른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던 김정일은 3년이 지나고 권력의 중심에 다시 등장해 역사상 최악의 기근을 겪고 있는 북한의 통치자 역할을 맡았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김정일의 3남이며 20대 후반에 불과한 김정은이 갑작스럽게 북한 전체를 통치하는 지도자의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일까.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정권의 안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자신이 김일성 사후 권력을 세습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974년부터 최고 지도자로서의 수업을 받았다. 그동안 김정일 주변에는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거나 권력을 빼앗으려고 할 만한 군부 원로들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10년 전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명목상의 지도자로 남아 있는 동안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왔다.
 
김정일 때와는 다른 김정은의 권력 계승
 
하지만 30세도 채 되지 않은 김정은은 스위스 유학을 중단하고 갑자기 북한의 최고 권력 서열로 뛰어올랐다. 그가 김일성대학 및 김일성군사대학에서 컴퓨터‧물리‧군사과학 등을 공부했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설령 김정은이 엄격한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김정일의 비밀 저택이나 개인 사무실 등에 개인교수를 불러 배우는 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어쨌든 김정은과 함께 공부했다거나 그를 개인적으로 가르쳤다는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게다가 김정은은 실제로 어떠한 특정한 일을 했던 경력도 없었다. 김정일이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3년 4개월 동안 북한 정권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기 전까지 김정은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993년부터 2008년까지 김정일을 수차례 치료했던 프랑스 신경외과 의사 프랑스와 자비에 루 박사는 당시 “병실에 들어갔을 때 환자가 김 위원장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다. 그는 생명이 위독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후 김정일은 극적으로 의식을 되찾았고 루 박사는 열흘간 평양에 머물다가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김정일의 미래가 걱정되곤 했는데 당시 막내아들 김정은이 자주 아버지를 찾아와 병상을 지키곤 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 북한은 2012년 4월1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경축 대규모 열병식을 열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의 권력 세습을 위한 김정일의 배려
 
김정일이 최우선시한 것은 자신이 선대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세습해 최고 지도자가 됐듯이 김정은도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 북한 매스컴에서 내보내는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께 공장‧농장‧군부대를 시찰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것이 됐다.
 
그렇다면 장성택의 위치는 무엇이었을까. 김정일 사망 후 한 달 만에 장례식 운구 행렬에서 김정은‧장성택과 함께 운구차를 호위했던 네 명의 장군은 모두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과 장성택, 또는 다른 누군가를 북한의 실제 지도자라고 여기고 있었을지 분명치 않다.
 
당시 누가 실권을 잡고 있었든 간에 김정은은 그만한 힘과 지식을 갖고 있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학 생활 덕분에 영어‧독일어, 어쩌면 프랑스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김정은이 처음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당시에 비해 살만 더 찐 모습 등을 고려해 볼 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다.
 
김정은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아부만 할 줄 아는 무능력자들로 보인다. 김정은의 집권 초기엔 장기간 이어진 경제위기와 기근 및 질병으로 악화된 민심을 휘어잡을 권력구조 확보가 시급할 수밖에 없었다. 김정은으로서는 혼란한 내부 상황을 정리하는 방안으로 핵과 미사일 실험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확보하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는 ‘화해’라는 수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불확실한 권력 엘리트들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포로 돌아간 미국과 북한 간 ‘윤년 합의’
 
2012년 4월13일 북한이 대포동2호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에 자금을 지원한 결과가 실패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불과 6주 전인 2012년 2월29일 미국 측 협상 대표 글렌 데이비스는 북한 대표 김계관과 북한이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것을 선언하면 미국이 식량을 지원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윤년 합의’에 서명했다. 하지만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서해에 떨어지면서 북한은 다시 한번 ‘불량 국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정보기관들의 분석 결과 미사일 실험이 실패했다는 평가에도 북한은 김일성100회 생일(태양절)을 맞은 그해 4월15일 대규모 군 열병식을 통해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대내외에 알렸다. 이날 행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열병식을 축하하는 연설을 20분가량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북한의 새 지도자로 등장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공개 행사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나는 성스러운 선군 혁명의 길에서 언제나 동지들과 생사 운명을 함께하는 전우가 될 것이며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받들어 조국과 혁명 앞에 지닌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권 세력의 물밑 권력투쟁과 ‘선군정치’
 
이 시기 북한에서는 이미 집권 세력 내부의 권력투쟁이 물밑에서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북한의 군 최고책임자 리영호가 전격 숙청되었다는 소문이 확산하고 있었다. 리영호는 김정일의 장례식 운구차를 호위하던 이들 중 김정은 바로 뒤에 있던 사람이다. 그렇게 막강하던 리영호가 실각한 것은 장례식 후 7개월 만에 조선중앙통신에서 노동당 내 모든 직위에서 물러난다고 짤막히 보도함으로써 확실해졌다. 보도에서는 리영호의 실각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장성택과 그의 아내 김경희가 선군 경제 강화를 목적으로 군부 개혁을 위해 리영호를 몰아낸 것으로 추정됐다.
 
같은 시기 김정은은 ‘선군정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북한 권력은 대를 이어 군사력 투자에 집중한 결과 110만∼120만, 어쩌면 130만 명에 이르는 군사력을 보유함으로써 중국‧인도‧미국에 이은 군사 대국으로 이미 러시아의 군사력 규모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이 지도자로 등극하기 전인 2010년 천안함 폭침 및 2011년 연평도 포격 등으로 북한은 이미 그의 배짱을 시험하고 도발 의지를 과시했다. 나아가 김정은은 핵무기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가장 큰 목표를 이루려는 야망을 드러냈다. 2012년 1월20일 북한의 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과거 핵실험을 통해 북한의 적대 국가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김정은의 발언을 전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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