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은 ‘20세기 흑사병’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로 기억되는 시기였다. 1996년 에이즈 치료제 ‘크릭시반’이 개발돼 병의 위력이 수그러들기 전까지 사람들은 에이즈를 인류를 멸망시킬 병으로 인식했다.
이즈음 나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AID아파트’라는 이름의 건축물이 떡하니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에이즈 환자를 격리 수용하는 아파트가 생긴 것인가.
알고 보니 이 아파트는 미국의 대외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AID·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의 차관으로 197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였다. 공포의 에이즈(AIDS·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와는 철자부터가 달랐다.
‘차관아파트’라고도 불렸던 이 아파트는 5층 건물 30동으로 건축되었다. 총 1680세대 중 15평형이 1510세대를 차지할 만큼 전적으로 서민형 아파트였다.
영동AID아파트 외에도 이 일대에는 영동공무원아파트·영동아파트·영동시영아파트 등 ‘영동’이라는 이름을 단 아파트들이 많이 건축되었다. 대체 강남하고 영동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서울에서 도시개발계획이 시작되었을 당시 강남 땅은 제 이름이 없었다. 영등포와 성동의 중간 지역이라는 뜻에서 임시로 ‘영동지구’라 지칭했고 아파트 이름에도 그 흔적이 남게 된 것이다.
그러잖아도 강원도 영동 지방과 충북 영동을 두고 사람들이 헛갈려하는데 남서울 영동까지 추가되면서 그 혼선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행정구역이 분할되면서 이곳은 영동이라는 이름 대신 비로소 서초구와 강남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1970년대 초반 정부는 영동지구(강남)를 신시가지로 조성하기 위해 250만 호 주택건설을 목표로 10개년 장기 계획에 들어갔다. 영동지구 아파트 취득자에게는 등록세·면허세·도시계획세 등 지방세를 면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영동AID아파트는 우선분양(공무원·군인·언론인) 40%를 제외하고 60%에 해당하는 840호를 컴퓨터 추첨으로 일반에게 분양했는데 희망자가 많아 경쟁률이 7.5대 1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동AID차관아파트는 현재 삼성동 힐스테이트 1단지(1144세대)와 2단지(926세대)로 재건축되었다. 단위 세대의 면적은 12평에서 43평까지 다양하다.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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