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52] 교회 오빠, 변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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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6 06:30:03

주중엔 새벽 예배만 드리고 주말엔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봉사로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고, 희숙이 교회 봉사하면서도 성적을 놓친 적 없어서 아버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그 수고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리라 믿었다.

같은 고등부 1년 선배 변태섭이 그랬다. 변태섭은 교회 성가대에 새벽기도까지 다니면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그를 목사님은 하나님이 시간의 십일조에 기뻐하시고 응답하셔서 채워 주신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 핑계가 못난이들의 변명과 타협이란 것을 보란 듯이 보여준 셈이다. 더구나 변태섭의 어머니는 불교 신자에 일 년 열두 달 열세 번이나 제사 지내는 집안이었다.

변태섭을 보면서 희숙의 아버지는 당신 딸도 그러리라 믿었다. 성적을 떠나서, 하나님 섬기는 일은 삶의 우선순위라는 걸 아버지가 먼저 아셨다. 아버지가 모르는 게 있다면 윤희숙은 변태섭과 같은 달란트를 갖지 않았다는 것과 딸 희숙이 변태섭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희숙이 교회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이유는 변태섭을 더 자주 보기 위해서였다. 언제부터인가 변태섭은 희숙의 롤모델이자 설렘의 대상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성으로서 긴장감이 치열하게 가속되고 있었다.

변태섭은 희숙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몰라도 자잘하게 챙겨 주긴 했다. 가령, 변태섭이 자기 아버지를 졸라 대학 입학 선물로 희재 양화점 구두를 세 켤레나 맞췄다든지, 주일에 수학이 약한 희숙의 남동생 희완을 불러다 오답노트를 봐 준다든지, 식사 때마다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든지. 별 의미 없이 한 언동이었겠지만 희숙에겐 주님이 주시는 감사와 은혜만큼의 희열이었다.

변태섭은 대학생이 된 후 더 이상 교회에서 볼 수 없었다. 서울 이모 집에서 통학한다던 그를 다시 본 건 6월 말쯤이었다. 방학을 맞아 부산 집에 내려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교회엔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그러다 6월 마지막 주일에 불쑥 나타났다.

서울 물이 들어서인지, 대학생이 돼서인지 그는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세련되고 성숙한 모습이었다. 고작 6개월 사이에. 그에게 외모의 변화 말고도 다른 변화가 있다는 걸 짐작했다. 대학 1학년 1학기를 마친 대학생의 모습은 아니었다. 의욕과 희망·고뇌와 결기가 어우러진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느낌은 아마도 어지러운 시국에, 그도 시위에 합류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 때문이었으리라.

청년부 전도사는 그가 반가운 나머지 그를 자기 집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대학생들만 초대받은 줄 알았는데 전도사는 희숙에게도 참석해 달라 했다. 변태섭의 요청이었다는 걸 희숙은 까맣게 몰랐다. 변태섭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이야기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들의 독점적 이익이 극대화되면 점점 노동자들은 돈을 벌지 못하고 자본가의 이익만 쌓이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설파했다.

여고생인 희숙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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